[바카라] 필경사, 바틀비 by 허먼 멜빌, 1853
창비, 2026, 비매품
173년 전 허먼 멜빌의 단편, '필경사, 바틀비'는 장르를 규정할 수 없다. 그 의미는 그 어떤 장르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창비에서 규정한 '시티 픽션, ' 도시 삶의 긴장적 서사에 대한 이야기라는 구분은 단순하지만 끝없는 복잡성을 가진 형식이다.
바틀비에 대해 소진, 소외, 거부, 반항, 고독, 죽음을 분석하고 평가하여 조언함으로써 세상에 경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나 한병철 같은 철학자들의 이름을 꺼내 바틀비를 조목조목 비틀며 명석한 해설을 할 수도 있다. 자본주의를 사는 인간이 오염되는 과정을 지적하며 왁자지껄 떠들기 좋은 주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언어 안의 의미 연합과 변화에 관심이 많고 언어를 추상화처럼 대한다. 그래서 아래가 보이지 않는 우물 같은 언어에 감히 두레박을 내리기도 한다. 모호한 언어를 내 나름대로 길어와 반죽하고 모양을 만드는 일이 나를 살게 한다. 바틀비가 내 심장을 조이고 있다.
상사인 월스트리트 변호사가 우체국에 심부름을 보내려 하자 바틀비는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라고 말한다. 상사가 '안 가겠다는 말인가?(You will not?)'라고 다시 묻자 '안 가고 싶습니다.(I prefer not.)'라고 대답한다.
바틀비는 현재부터 미래까지 가능성 안에서 존재하는 자다. 자유 의지로 산다. 그의 혈색과 차림과 무채색 삶이 주는 암시보다 그가 최소한으로 하는 말이 그의 존재 방식이다. 스스로 선택 가능한 것들을 분명하게 가늠하여 자신을 또렷하게 각인시키는 삶의 양식이다. 하지 않음으로써 더 강력하게 존재한다.
현실적 행동을 강요하는 물음에 자신의 현실화를 유보한다. 상대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고 서로 바라 볼 공간을 넓게 만드는 would에서 바틀비를 본다. 그리고 prefer의 선택의 의미 또한 가능성이다. 하지만 직접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멈추고 바라보며 상대를 흔든다. 억압과 순응을 강요하는 상대를 무력화하여 한 방 먹이는 화법이다.
나는 Will you marry me? 와 Would you marry me? 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었다. Will은 상대의 의지를 파고들어 그 의지를 현실로 만들 건지, 즉 나랑 결혼을 할 건지 안 할 건지에 대해 결정하라는 압박이다. 기대하는 행동은 즉각적인 언어적 대답이다. Yes인지 No인지. 단칼에 방향을 정하는 거다. Will은 의지 자체다.
Would는 의지를 가능성 안에 머물게 한다. 함께 할 삶에 대해 긴 멈춤을 허락한다. 하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는 그런 기다림, 그 멈춤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슬롯 체제에 어서 적응하고 변화를 서두르기 위해 Will you marry me? 다음에 Yes를 쟁취하고 섹스를 하고 아이를 낳고 승진을 하고 은행을 들락거린다.
바틀비는 현재의 자신을 알고 미래를 스스로 준비한 인간이다. 일반적인 삶의 시각에서는 바틀비의 삶은 끔찍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바틀비는 동요하지 않는다. 스스로 의지를 멈추고(would)와 자유롭게 선택(prefer)하려는 가능성 속에서 존재한다.
반항도 복종도 전혀 하지 않으면서 남은 세상에 경종을 울리는 존재, 바틀비이다. 가장 미세하면서도 근본적인 저항의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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