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 (1954)

[예술수다모임: 영화] 로베르또 로셀리니 감독

by서희복

돌체 파치엔테!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 대한 이탈리아적 예찬이 멋지다.


영국적인 조급함이 대조되며 관계적인 외로움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본다. 권태스러운 부부의 일상적인 흐름을 시간과 공간의 감각에 의존하여 둘 사이의 갈라진 건조한 틈을 바라보게 한다.


작은 차 안에서 과시적인 정장을 하고 꽉 들어차 앉아 드라이브하는 첫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 불안과 긴장이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해소되지만 다소 당황스럽다. 그래서 서로 바라본 시각을 나누며 놀라움을 발견한다.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다양하고 낯선 시선들이 아름답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 혼자이거나 같이 공유하는 공간들이 벌리는 마음의 여유, 현재를 들여다보게 하는 성찰적인 발걸음들이 이탈리아 남부의 여러 곳을 지나며 점점 더 큰 의미가 된다.


현재에 몰두하거나 과거를 돌아보거나, 그 시간의 층이 남녀의 심리를 보여준다. 남자는 Right Now인 것에 집착하고 여자는 Right을 찾아 헤맨다는 말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에 고인다. 본능인지 본질인지.


각자 원하는 장소에서 자기 안의 빈 마음을 느끼는 시간의 차이가 확연하다. 남자는 배를 타고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시고 여자의 주위를 돌며 현재에서 방황하고, 여자는 유적지를 돌며 과거의 이야기 속에 자신의 현재를 묻는다.


둘 다 공허한 시간을 걸으며 보이지 않는 긴장과 불안을 겪는다. 눈빛이 보이지 않는 여자의 선글라스, 눈을 감고 누워있는 남자, 심리를 보여주는 영화적인 대조들이다.



서로를 새로 발견하는 찰나들이 벌어진 균열을 채운다. 행복한 모습의 상대를 낯설게 인지하는 멈춤이 관계 회복의 실마리이다. 나폴리의 자연과 폼페이의 열기로 이동했다가 광장에서 해소되는 심리적 긴장에 안도하지만 한 순간의 해피엔딩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른다.


이탈리아의 의미 있는 유적지에서 남아 있는 흔적에 새겨진 이야기를 듣고 경험하며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 여자의 시간들을 같이 걸었다. 느릿하고 평온한 자연을 지루해하고 타인들로부터의 위안을 찾으려는 남자를 보았다. 여행이라는 시간과 공간이 일상적인 권태의 심리와 닿아 생각할 여지를 많이 준다.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서로의 마음에 대한 대화도 배려도 없이 방황하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은 공허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서로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묻지도, 듣지도 않는다. 관계에서는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배려가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