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 유승도 시집, 창비시선 536, 2026
선택할 목록을 살피던 중, 제목보다 더 끌렸던 것은 그의 이름에 들어 있는 글자 '도道'였다. 사는 것이 그렇게 우연한 일들이 많아, 길을 헤매며 수습하게 된다.
코발트블루를 품은 표지에는 자연이 세상을 향해 곤두박질치듯 거꾸로 내려다본다. 그것도 좋다. 마치 어느 우주로부터 가속도가 붙어 떨어지며 머릿속에 압력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눈을 틀어막는다.
첫 장을 넘기니 바카라날개가 품은 보편적인 정보와 시인의 사진 사이에 거리가 보인다. 그가 걸어온 자취가 흠뻑 스민 거리, 지금까지와 바로 현재 사이의 거리, 그 거리에서 십 오도쯤의 눈높이를 한 시인.
거친 옆모습으로 시를 써 내려갔으리라. 덥수룩하게 무겁게 덥힌 그 사이로 힘껏 소리 내지 못한 파편들을 시집 안에 고이 글자로 새겼으리라. 그와 그의 시들이 검은 상복을 입고 서 있는 듯한 세 번째 페이지를 지나간다.
에필로그와 프롤로그 사이에는 오랜 시간을 조용히, 그러나 뜨겁게 산 흔적들이 부지런하다. 가만히 누워있지 않은 시어 사이를 나도 멈추지 않고 걷는다. 시인이 서 있는 곳에 섰다가 쭈그리고 앉으면 같이 앉는다.
초탈한 모습에 두어 걸음 뒤에 서서 바라보다가 슬퍼하는 곳에서는 등을 다독이고 싶다, 말없이 그저 서서. 그런 삶이 빼곡하다. 갑자기 터지는 공포의 웃음이 있고 숨을 멈추게 하는 다정한 순간들에 행복하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들을 향한 외침을 가슴에 심고도 무심히 풀을 뽑고 괜한 돌멩이를 툭툭 차며 길을 걷는다. '시를 쓴다며 가까운 이들에게 폐만 끼치다 간다...(p.10)'가 첫 시의 첫 구절이다.
키우던 개를 잡아먹으니 '사람의 배로 들어가 사람이 된 개(p.11)'로부터 그려지는 그의 세계가 서늘했다가 '자연의 손바닥(p.12)'에서 안도한다. 물까치의 '목이 뚝 끊기며 머리가 없는 몸이 내 손(p13)'까지 읽다가 눈을 감는다. 내 삶의 어느 곳에서 마치 있었을 것 같은 개와 까치의 널브러짐, 통증을 주워 담는다.
'어둠 속엔 피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만 있다고 생각하지는 마 너도 어둠이잖아?(p.55)'는 시 한 편의 전문이다. 제목에서 전율이 느껴져 움직일 수 없었다. 제목을 포함한 세 문장 속에서 무수한 서사를 상상한다. 떨리며 빠르게 뒤틀리는 손의 경련이 온몸으로 퍼진다. 배가 아프다.
시詩를 쓰는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시인 유승도를 조용히 되짚어 본다. 창비에서 첫 시집을 낸 지 27년 만에 출간된 그의 두 번째 창비 시집이라며, 발문을 쓴 고형렬 시인이 새겨둔다. 시인이 살아온 27년의 흔적들이 앞으로도 긴 울림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고형렬 시인의 진심 어린 애정을 읽는다. 이처럼 아름다운 발문이 있다. 하나의 작품처럼 서사적이다. 유승도 시인을 모두 읽고도 계속 품에 안고 있다. 삶에 스며든 시어들의 영원이 좋다.
나는 상상한다. 시인, 글 쓰는 사람, 그리고 그들에게 기꺼이 심장을 열어 발문을 바치는 사람들을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