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레카 by 아오야마 신지 감독, 2000, 한국 2026
원래가 무엇인지 모르는 곳에서 시작하려 한다. 어떤 결심이나 깨달음이 지속되고 있는지 자신조차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시작하고 정하고 옳은 일이라 결단한다. 자신의 치유를 위해 보편의 슬롯적 바카라임에 기댄다. 돌봐야 할 이가 있다면, 그게 아이들이라면 더욱더. 타인을 위한 삶의 길이는 자신의 남은 시간과 반비례한다.
갑작스러운 파열로 삶이 급회전한 듯 하지만 그 '본연'은 모든 충격음을 흡수한다.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그가 가야 할 곳은 치워야 할 쓰레기가 쌓인 그곳이다. 그가 버리고 간 자리에서 고름으로 찰 심장이 통곡을 해도 그보다 더 깊고 쓰라린 상처를 향해 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기심과 이타심은 키가 같다.
무의식 충동적 분노의 칼 끝에 진부한 정의의 실현이 더해지고, 의심이 끼어든 신뢰의 고백에 괜찮다는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현재를 미래로 대입하려는 꿈에 실금이 갔다. 가당키나 할까.
의심하는 사람은 생명을 해하고 섣불리 판단한다. 버림받은 상처를 피로 치유하려 하고 전해진 붉은 아픔은 여린 목소리를 삼킨다. 누설할 수 없다.
소통을 위한 연대가 환각으로 치환된다. 혼자 앓는 병증의 고통마저 남은 이를 위한다는 터무니없는 비현실, 이 시대에 주는 극한 처방이다.
의심하지 않는 포용이 이기심에서 끊기면 세상이 반사하는 부정과 불안에 마음을 내주게 된다. 의심은 결핍이 주는 고질병이다. 손해보지 않으려는 탐욕의 다른 이름이다. 어쩌면 가난이 주는 허한 흔적, 마음의 가난한 누추한 사람이 된다.
타인의 희망에서 자신의 꺼지는 영혼을 예감하는 그 육신의 비틀거림이 바람처럼 남는다. 그가 흔들리는 그 둑길에서 기어이 깨닫고 마는 절망이 있다. 그런 사람은 없다.
꽤 오래 비어있는 마음을 실험하며 결국 먼 사람이 되겠구나 탄식한다. 끝내 믿지 못하는 마음이겠구나 막막함을 삼킨다. 괜한 희망을 쥐고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시간들의 귀를 맞추어 접는다. 누설도 없고 사람도 없다.
더 멀어지는 사람이 되는 길, 잃기만 하는 그는 알 길이 없다, 치유의 기운이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되었다는 것을. 변태 하기를 바랄 뿐. 초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