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칫거리는 이유

[바카라]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2021

by서희복

레이먼드 카버 외 14인의 작가 지음, 파리 리뷰 엮음 (2012), 이주혜 옮김, 도서출판 다른



레이먼드 카버의 글을 좋아한다. 뒤죽박죽이면서도 비참했을 그 삶의 비릿함을 미리 알지 못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글과 글 뒤에 숨겨진 음모와 전략들, 필요한 쌀알의 개수가 턱없이 부족한 공복의 모멸감, 그런 여러 현실을 미리 알고 세상에 나온 글을 읽는다는 것은 전혀 순수하지 않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불일치에서 오는 불편함을 기대와 환상으로 채운 글들이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고 있다. 그래서 글은 글로만, 오로지 독자로만 다가가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쏟아내는 글자들과 그 사이 공백만큼의 거리가 위선처럼 느껴진다. 그런 잡생각들이 나를 잠식해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오염시킨다.


차라리 피상적이라도 역사를 분석한 글이 더 편하게 읽히며, 현재 전시된 정보를 대충 훑어보는 시대의 흐름을 따르는 것이 더 낫다.


바카라을 읽다가 머뭇거리는 이유는, 비록 의도적으로 목표를 명시하지는 않았더라도, 겉표지 글의 순서와 목차, 그리고 정보의 나열이 독자에게 이렇게 읽으라고 압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아온 작가다. 출생 연도와 성장한 지역, 각종 상의 명칭, 그리고 죽음의 상태와 모습들은 글을 억압적으로 읽게 만든다. 그 글을 평가하는 쉬운 판단들이 대중의 고개를 쉽게 끄덕이게 하는 이유는 글을 쓴 사람이나 비평하는 이들이 가진 ‘대가’라는 명칭, 받은 상의 개수, 그리고 현재 서 있는 위치 때문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허전해진다.


팔아야 하니까

팔아먹어야 하니까

침을 바르고 자극해야 하니까


관계 자체와 관계의 거리에 빠져 있다가도 다시 되돌아와 글 밖의 작가 모습을 새기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겹친다.


소설

제목을 읽는다

글에 들어간다

제목 다음에 쓰인 작가의 삶을 산다

다시 글로 돌아가 그 작가를 따라간다

바카라 표지를 샅샅이 살핀다

대문자와 소문자, 글씨체의 크기와 굵기를 바라본다

아이에스비엔의 각도를 눈치챈다


세상이 비리다

소설을 쓴다

부끄러워서

나는


이런 방식으로 열다섯 편의 소설 중 절반가량을 읽었다. 각기 다른 색깔의 글 속에서 예기치 못한 당황스러움에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만날 때가 좋다.


나는 소설을 쓰고 꾸역꾸역 다시 읽은 후 초고를 완성한다. 때로는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퇴고하지만, ‘퇴고’라 이름 붙인 글에는 군데군데 모멸감이나 비루함을 감춘 불룩함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을 노골적인 단어로 드러내지 않고도,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아도 훅 끼치는 방식으로 표현한 레이먼드 카버로 다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