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소설가

[바카라] 오르한 파묵 저, 이난아 역, 민음사, 2012

by서희복

오르한 파묵은 '순수 박물관 (민음사, 2010)을 소설가로서 자신을 기억하게 할 소설로 말한다. 오랜 기간의 집착적인 짝사랑에 대한 독특한 기법의 소설이다.


소설 안에서도 오르한 파묵은 작가로 소개된다. 이 소설을 읽으며 플라스틱 통 안에 오래 묵혀지고 있는 굵은소금이 생각났다. 살금살금 간수가 흘러내리며 굵은소금의 입자를 씻어 내리는 간지러움과 짜디짠 모멸감과 비루함을 맛보았다. 다른 문화, 다른 언어, 다른 방식의 집착에서 오는 신선한 낯섦이 좋다.


그가 쓰는 소설의 이전, 과정, 쓴 이후의 이야기를 하버드대 강연으로 풀어낸 바카라인 '소설과 소설가, ' 그의 순수박물관을 다 읽고서 다시 집어 들었다.


중고등학교에서 국어시간에 시험용으로 배운 소설 종류, 구조, 작법은 이미 사라진 상태에서 새롭게 다가온 것들을 간단히 기록해 둔다.

글쓰기 및 평가 모임에서 멤버들이 했던 소설 쓰기에 대한 확언들에 쉽게 동의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나는 등단을 위해 체계적인 읽기와 따라 쓰기를 한 적이 없고 독자의 기호를 위해 소재나 스토리라인을 바꾼 적도 없다. 괴이하고 모호하고 복잡한 초고 쓰레기 배출에 한몫하고 있다는 간접적인 평가를 지금도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파묵 씨는 소설의 아찔함과 모호함(p.57)을 소설을 읽는 이유로 든다. 허구에 대한 독자와의 공통 이해가 없어서 소설이 예술로서 살아 있을 수 있다(p.57)고 말한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시각적 문학(p.97)이고 명확한 '무엇'이 아니라 허구와 상상 속에 그것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라 한다.


단어적으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나 교훈적으로 그래야 한다든지 하는 이념의 목적을 가지는 것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


설명이나 이념 말고 '보도록' 하는 것, 시각적인 각인이 필요하다. 소설 속 인물들이 현실적이든 허구적이든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텍스트의 복잡한 나열이 아닌, 의뭉스럽게 배치한 교훈적 조언이 아닌, 묘사를 이미지화하는 것이다.

그림과 이미지가 단어보다 앞선다는 것은, 상황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소설가들이 화가들에 대해 느끼는 은밀한 열등감 또는 뿌리 깊은 질투심... (p.111)


헤밍웨이가 했다고 전해지는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라는 말이 가슴속에 굳은살로 쌓이고 있다. 돌로 굳어가기 전에 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하고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