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수다모임: 영화] Double Indemnity, 빌리 와일더 감독
생각이 흐르는 곳에 갔다.
질문을 자유롭게 던지고 받는 곳에 있었다.
어색하고 경직되고 조작되고 머뭇거릴 줄 알았다.
좋아하는 것을 나누는 자리는 그럴 리 없었다.
영화를 보고 한참 거기에 머물렀다.
이중배상이라는 한국어 제목이 두툼하다.
영어의 직관적 의미의 무게를 주시했다.
감시통제 시스템에서도 40년대 영화라는 것에 놀랐다.
언어적 밀당과 은유가 뻣뻣한 체제를 비웃고 있었다.
그래, 그게 예술이지, 바로 그게.
리더가 직접 길러 수확했다는 노란 방울토마토를 물었다.
탄닌으로 묵직한 조지아산 와인이 꿀렁거리며 흘러내렸다.
넛티한 흑백의 초콜릿 조각들이 살인을 상상하게 했다.
전혀 누아르적이지 않은 재스민 냉차 향기와 맛에 빠졌다.
제일 먼 곳에 사는 멤버가 되었다, 모두 서울, 나만 경기도다.
풍성한 눈빛과 목소리로 영화를 나누며 우린 다른 사람이 된다.
나는 이 모임의 리더를 존경한다.
2년 차 존경은 사랑이 되고 응원이 되었다.
이 사람 옆에 있으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미약하나마 힘이 되고 싶다는, 내 능력에 부치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을 하며 행복해한다.
모임을 열고 와인 파티를 즐기는 그를 생각하며 마트의 치즈 코너에서 홍홍홍 기쁘게 옹알이하며 치즈를 골랐다. 미국, 네덜란드, 독일... 빌리 와일더를 생각하면 독일은 빼고 싶었지만 하얀 상자 속에 비치는 치즈살이 고와 보여서 장바구니에 넣었다.
인상 깊었던 장면들이 합집합이 되었다가 교집합에서 탄식한다. 서로 다르게 겹치는 미장센의 가장자리를 아끼며 나누었다. 많은 영화 장면에서 손가락의 센슈얼한 흔들림을 본다. 노골적으로 끈적이는 침이 그녀를 향해 흐른다.
두 시간을 넘기며 인상 깊은 장면 그리기와 평점, 한 줄 평으로 마무리했다. 내 안의 새로움을 자극하는 놀이터를 뛰어다녔다. 나는 왜 발찌를 한 그녀의 하이힐을 벗겼을까. 아마도 내 욕망과 맞닿았는지도 모른다.
그리움이 나를 바라며 기울지 않을 거란 걸 깨달으며 가슴 한편이 뭉텅 비어버린 요즘, 어떻게든 시간을 채우려고 헤매다 이 예술 아지트에 제대로 들어섰다.
손가락 끝으로 지~익, 성냥의 열기를 가슴에 심는다.
누아르(어둡고 음습하고 묵직한)
서스펜스(시청자는 범인을 알고 등장인물들은 모르는)
미스터리 (시청자도 등장인물들도 미궁 속에 머무는)
플래시백(결말을 알려주고 과거로부터 거슬러오는)
리더의 흥분된 목소리가 여전하다.
영화가 주는 매력과 영감에 싸여 강변북로를 달렸다.
▣ 포스터 from IMdb (International Movie Databa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