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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영화] 못하니까 안되니까 없으니까

by서희복


대작 영화의 거대하게 부푼 제목, 걸맞은 철학을 기다리다 툭 떨어진 철렁함을 본다. 오죽했으면.


가까운 미래를 상상했다며 신박한 결말을 기다리다 진부하게 엉키는 듯한 착한 응원에 한숨을 쉰다. 오죽했으면.


스티븐 스필버그와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메시지를 물에 풀어 입으로 불어 부채질을 하며 쉬운 산수 문제로 만들어 세상을 구하려 한다. 이 정도면 이해하겠지.


영화가 끝난 그 자리로부터 거슬러 오르며 시간을 검열한다. 가장 최근 누구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였었는지, 그의 입장에서 다독거렸었는지, 끝까지 이해하려는 노력을 했었는지, 다른 시선과 견해에도 편견 없이 의견을 나누었었는지. 결국 그러라는 건데, 모두 알아듣겠는데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다. 여태 그런 사람인 줄 알고 스스로 다독이던 손을 주머니에 꽂는다. 다시 입장, 이해, 시선, 결내, 의견으로 돌아갔다가 큰 한숨을 쉰다. 에고 매니악, 그제야 냉기를 느끼며 서늘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디스클로저 데이, 2026)이 내 위태로운 가식의 시간들을 폭로하고 있다.


좁고 어두운 과거를 산 사람들에게 미래는 다르지 않다. 거기에 머물며 의심하고 탓하고 자학하지만 같은 종으로부터 얻는 건 서로 같은 처지라는 확인이다. 그래도 돼요. 그러길 원하니까요. 내가 그러길 바라니까요, 내가. 하지만 진화하는 세상의 모퉁이를 보지 못하는 사이 상처는 커가고 회한도 자란다. 왜 그랬을까. 살아가는 품의 크기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으며 서로 자유를 얻으려는 안간힘이 힘겹다. 가능한 걸까. 에너지를 얻으려는 왜소한 흔들림의 시도가 그래도 희망인 것을 알지만 불안은 여전하다. 나는 언제 상자 밖으로 나오게 될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상자속의 양, 2026)이 구멍을 들여다본다.


희망은 어쩌면 고문일지도 모른다. 지금 잡히지 않는 것이 잡힐 듯 어른거린다. 아지랑이 같은 신기루 같은 오아시스 같은, 상상이다. 닿을 수 있다는 갈망이 페달을 더 세게 밟게 한다. 지독하게 잔인한 현실에서도 빠르게 지나가는 친구의 농담에 웃고 충분하지 않은 잠자리를 쪼개며 몇 마디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 있다. 매일 보장되지 않는 잠자리와, 끝까지 믿고 싶은 인간의 심장에 거세게 차이면서도 돌보고 싶은 사람을 위해 피를 바친다. 짜인 각본에 안주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삶은 짜놓은 판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진짜 너는 누구인가. 보리스 로즈킨 감독(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 2026)이 엮은 그 48시간이 나의 줄타기 같은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속삭인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



■ 사진,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 from CG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