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침묵의 친구 by 일디코 엔예디, 2026
Silent Friend, 조용하게 생명의 소리를 품고 산다. 1832년 그곳에 당도한 나무가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가 신비롭다. 사람들은 귀를 거스르는 소리를 지나고 눈으로 상상하는 흐름을 듣는다. 마주하는 여학생의 외로운 눈을 맞추고, 기대앉은 남학생의 믿는 언덕이 되고, 외로운 학자의 영감이 된다. 오랜 고독에 거주해 온 위로는 그 농도를 더해 대답하고 치유하며 영감을 준다.
천년을 넘겨 산다는 은행나무는 스쳐가는 흔적을 기억하며 그 자리에 200년 가까이 서서 사람들과 동행한다. 높은 나무로부터 그 아래를 움직이는 낮은 식물들, 꽃과 잡초들, 곤충과 달팽이, 야생을 기웃거리다 들르는 동물들, 그리고 사람들이 있다.
바람을 실어 보내며 흔들리는 나무의 시선은 경이롭다. 가지 사이로 작게 보이는 사람의 얼굴에는 무심하게 나무를 대하는 표정 안에 언뜻 누군가와 마주친 것 같은 가벼운 당황이 있다. 따뜻한 손가락의 온기가 거칠고 투박한 나무껍질을 통과할 때 물기 가득한 맥을 따라 나무는 두근거린다. 숨구멍을 열고 팔을 뻗고 한숨을 쉬고 바람의 힘을 빌어 격정하는 빗소리에 숨어든다.
그 나무는, 그 독일의 한 대학 정원에 외로이 자라 온 은행나무는 그곳에서 일어났던 사람들의 역사를 자신의 방식으로 기억한다. 기록한다.
열정은 무례의 통로를 건너게 한다. 완전하게 창과 방패를 들고 철저하게 미리 무장한 비열함에 용감하게 맞설 줄 안다. 남자의 갈빗대라는 자유의 억압을 가당치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걸어간다. 그 뼈다귀를 부러뜨리고 남자를 잉태하는 영혼들이 당당하게 자신을 산다. 열등감의 신화가 만연하지만 준비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드물다. 남자의 열등감과 적이 되는 것을 택한 여자 사이에서 자신의 길을 찾을 줄 안다. 오래전 내가 매혹당했던 린네의 분류 원리가 반가웠다.
침묵의 소리를 밖으로 끄집어 내 소통하는 언어를 만들려는 것 또한 열정, 그 열정을 사랑하는 몰입의 순간들이 아름답다. 제라늄의 숨소리가 보인다. 분홍색 목소리가 아우성이다. 너무나 가까운 거리에서 두근거리는 심장을 듣는 것만큼 센슈얼한 것이 있을까. 작은 불협들이 모아지는 은밀한 온도가 애를 태운다. 그런 갈증의 눈빛, 긴장한 손가락의 망설이는 순수가 풋풋하다. 구운 감자를 껍질 때 먹는 그녀가 소년에게 기댄다.
정지된 시간과 공간은 두뇌를 재구성한다. 비어 있는 것 같지만 흥분해 부풀어 기다린다. 방향을 우연을 서로를 가지는 통로를 향하게 한다. 몰입하던 것이 사라질 때의 공허와 고독은 철저하게 다르게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보통은 좌절하며 가라앉지만 어떤 사람은 그가 찾아온 방식을 거슬러 올라가 사람과는 다른 종에 다다를 줄 안다. 같이 느끼려는 공간에서 같은 흥분에 취하면서 외로운 나무를 다독일 줄 안다.
길을 걸으며 숲을 헤매며 낮게 흔들리는 식물들도 높게 흔들리는 나무들도 한층 더 가깝게 다가온다. 바람의 두께만큼 큰 목소리로 흔든다. 어쩌면 그들은 협업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무가 전하는 기쁨의 리듬을 들을 수 있는 슈퍼내추럴한 기운을 더한다. 앞뒤로 따르는 그 목소리도 가슴에 오래 담아둔다. 어제 내게 무언가 말해 주었던 나무는 오늘 내가 새롭게 살아갈 다른 기억을 전할 거란 걸 알고 있다.
▣ 사진 from CG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