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라는 구멍에 눈을 대고

[영화] 르느아르 by 하야카와 치에 감독, 2026

by서희복

언제 어른이 되었을까보다 언제 어른이라는 세상에서 한 발쯤 거리를 둘 수 있게 되었을까가 더 쉬운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어른스럽다는 것은 아직 어른은 아닌데 그래야 하는 순간들이 잦아지는 슬픈 현실이다. 어른스러워야 했던 시간들은 보통 열어야 할 때 입을 꾹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문득 알려주기도 한다. 난 그랬다.


어른이라는 숱한 구멍으로 살다가 하나의 커다란 구멍으로 사라져 가는 그 구멍에서 나온 아이는 세상 나이테 초등학교 5학년이다. 보통은 누구나 다 지나는 그 한 때의 빈 마음을 채우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나의 이야기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인.


시시콜콜 어른들은 무심한 콧방귀에 산다. 죽음에 다가가는 생명에도, 살려고 속아가는 낡은 웃음에도, 걱정한답시고 고자질하는 꼬질에도, 진심보다 무심의 게으름이 흐른다. 물어보는 사람은 없다. 손을 내미는 사람도 없다. 물만 주면 쑥쑥 자랄 줄 알지만 보이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어른들만 그걸 모른다. 정답을 쌓아 두고 그 사이에 아이들을 끼워두고 그저 자라라 잘 자라라 한다.


주술적인 행위 뒤에 맺힌 아이의 눈빛은 아무리 간절해도 바로 사라지는 바람이다. 하지만 그 간절을 이어 통하려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솔기가 끊긴 어른 사이로 아이의 체념이 머문다. 이렇게 점점 커지는 거구나, 이렇게 커다랗게 구멍이 되어가는 시간이 쌓여 어른이 되는 거구나.


아이는 어른의 세상에 눈을 대고 크게 떴다가 움찔 감았다가 눈물을 삼키고 견디는 법을 알아간다. 그래도 매달린 작은 희망을 놓지 않는 건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산다는 건 반드시 어른을 건너 자신으로 사는 길을 아는 것이다. 낯선 손길이 볼을 쓰다듬어도, 비루한 풋어른에 내몰려 길거리에 앉아 졸다가도, 자연은 본질적인 생명을 품고와 순수를 원래 자리로 옮겨둔다 믿는 것이다. 세상을 등지는 마지막 빛으로 아이를 살리고 그 아비가 가는 길에 꽃이 필 것이다.


어쩌다 알게 된 아이의 간절에 손을 내밀 수 있는 어미는 웃음을 회복할 것이다. 그 어미의 손바닥에 남은 온기로 아이가 살아갈 것이다. 눈으로 본 것들을 보이지 않게 새겨 어른이라는 챕터를 완성할 것이다. 데자뷔처럼 다가오는 어른의 흔적들이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조금은 더 현명하게 시간 속에 새겨질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그 시절에 나 또한 서로를 이어보려는 언어를 모아 어른의 모습을 희망했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래야 한다는 허망한 바람에 기대지 않고, 아이들도 견뎌내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보이지 않는 메아리로 남겨 두었다. 여전히 떠도는 그 메아리 속에 지금이 된 나의 모습이 있다. 어른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