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에서 경영학을 공부할 때, 경영대학 교수님들께서 다른 전공 교수님들이 경영학은 학문이 아니라고, 특히 경제학과 교수님들이 경영학은 학문이 아니라는 비아냥을 하신다는 말씀을 하신 기억이 있다. 물론 경영학은 학문적 색채가 옅고, 그만큼 실무적 색채가 짙다. 생산관리, 유통관리, 마케팅, 경영전략 등 실무에서 활용될 수 있는 이론을 연구하고, 실무의 성공사례를 다시 이론화한다. 그것이 경영학의 본질이다.
그런데 나는 대학으로 돌아와서 행정법을 다시 제로베이스에서 완전히 새로 배우고 있다.
석사과정, 박사과정, 변호사실무와 법제처 법제실무에서 경험한 것과 다른 경험을 매주 하고 있다.
매주 변호사시험 기출문제를 분석하고, 풀이방법론을 고민하며, 예시답안을 학생들과 함께 탐구하는 수업을 하고 있는데, 행정법학은 경영학과 참 다른 분위기를 고집한다.
행정은 법령, 예산, 조직과 인력으로 돌아간다.
경영도 시스템과 재원과 인재로 돌아간다.
공적 영역과 민간 영역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은 다를 수 없다.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법제처 실무를 오래 해서 그런지, 지금의 행정법학은 매우 낯설다.
실무라는 토대 위에 여러 기둥이 세워져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경영학이 실무와 현장이라는 탄탄한 기반 위에 쌓아 올린 학문이라면,
행정법학도 정바카라과 현업이라는 탄탄한 기반 위에 쌓여 올린 학문이어야 한다.
그런데 행정법학서에는 '정바카라'과 '현업'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내가 법제처에서 법제심사를 하기 위해 개별 행정법을 이해하는데 보통 하루 이상이 걸렸다.
양육비이행법이 그러했고, 식품위생법이 그러했으며, 담배유해성관리법도 그러했다.
아무리 간단한 법률도 조문으로 이해하기에 한계가 있고, 정바카라을 함께 이해해야 전체가 보였다.
행정법은 그런 것이다.
정바카라을 잘 설계하라고 행정기본법이 있고,
행정을 잘 집행하라고 행정절차법이 있다.
문제가 생기면 잘 해결하라고 행정대집행법이 있고, 실효성 확보수단에 관한 여러 법규가 있다.
정바카라은 만들어지고 고쳐지고 때로는 폐기된다.
그 과정에서 근거 법령이 만들어지고 개정되고 폐지된다.
정바카라이 통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행정법도 통시적이다.
그런데 우리가 접하는 변호사시험의 행정법 문제는 대부분 '한 순간', '한 단면'에 집중한다.
관광진흥법, 문화유산법, 식품위생법, 교육환경보호법 등 개별 행정법이 툭툭 등장하지만,
그 법령의 목적(제1조)이 별첨 참조 조문으로 제시되는 경우는 드물다.
관련 정바카라의 개요나 설명자료가 제시되는 경우는 아예 없다.
법제처에서 법령심사를 꽤나 많이 해본 나조차도 개별법을 이해하는데 하루 이상 걸렸는데,
정바카라을 해보지 않은 로스쿨 재학생이 어떻게 문제만 보고 그 법령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 법령을 이해함을 전제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교과서에서 본 적도 없고, 유튜브에서 본 적도 없는 난생처음 보는 법령을 보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래서 매주 수업을 준비할 때마다, 모두에게 낯선 개별 행정법을 1장으로 정리한다.
그 개별 행정법의 목적은 무엇이고, 그 법률에 담긴 주요 정바카라은 무엇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주요 조문은 무엇인지 10~20분 설명한다. 정바카라을 보는 눈을 가져야, 행정을 이해하고, 행정법을 이해할 수 있다.
"교수님, 수업을 들으면 행정법 문제가 이해가 됩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열심히 준비한 것은 그 문제에 등장한 법률 설명자료와 정바카라 자료였다.
그 정바카라 자료를 문제와 연결하고, 예시 답안과 연결하려고 했다.
하늘에 붕 떠 있는 고귀한 이론을 우리 눈앞에 갖고 내려와서 손에 잡히게 하고 싶었다.
경영학의 수많은 이론이 우리의 스마트폰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듯이
행정법의 수많은 이론도 우리 곁에, 우리 삶에 함께 하고 있다.
정바카라이 담겨 있는 수많은 법령이라는 그릇으로 함께 하고 있다.
학생들의 눈에 그것을 더 많이 보이도록 하고 싶다.
당분간의 내 역할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