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간헐적 바카라방지기

by어슴푸레

서울로 올라온 지 한 달이 다 돼 간다. 해는 점점 짧아지고 찬기에 살갗이 자주 오스스하다. 가을빛은 하루가 다르게 깊어 가고 길게 볼 수 없어 더 각별하다.


카톡이 잠잠했다. 그간 올린 글로 서울에 있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그것이 나에 대한 배려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컴백했어요. 짧게 인사를 남기려다 창을 닫았다. 아직은 아니었다.


10월 초. '게으른 오후' 대표님이 계신 단톡방이 깜빡거렸다. 6일 오전 11시에 문학나눔 북토크가 열린다고 했다. "메모의 순간"을 쓴, 김지원 작가님을 초대해 '읽기와 쓰기 사이, 그 무용한 지대에 머무르는 즐거움'을 주제로 강연을 들을 예정이라고.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답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저 갈게요. 신청합니다. 어떻게 시간이 되세요? 네! 그렇게만 말했다.


화요일이 됐고. 스무 명이 넘는 '쓰는 사람'이 한 공간에 모였다. 바카라방에 들어서며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다. 어? 어떻게 오셨어요? 잠깐 오신 거예요? 아. 그게. 컴백했어요. 아주요? 네. 그렇게 됐어요. 아 그렇군요. 자주 뵈어요. 네! 시골살이에 궁금한 게 아주 많아요. 네. 짧은 순간, 서향라 작가님과 인사를 나눴다.


2013년부터 경향신문에서 기자로 글을 써 온 김 작가님은 2021년부터 약 4년간 인문 교양 뉴스레터인 <인스피아>를 기획, 발행했다고 했다. 너무 많은 바카라을 읽고 너무 많은 리뷰를 쓰는 것에 지쳐 이제는 적게 읽고 깊이, 오래 쓰기 위해 올해 퇴사를 했다고도. '메모'가 어떻게 글쓰기와 연결되는가를 주로 다뤘는데. 그중에서 '메모-일기' 장르는 언어가 될 수 있는 지점과 그렇지 않은 지점, 나의 언어와 타인의 언어 사이에 가장 아슬아슬한 지점에 걸쳐 있다는 말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관찰하고 메모하고 오래 머물러 그것이 마침내 우주를 뻥 뚫고 나갔을 때 무엇이 된다고도. 머물러야 잡아챌 수 있으니. 여러 권을 많이(too many) 읽지 말고 한 권을 많이(too much) 읽으라고 했다. 읽기 강박의 시대에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죽어 있는 '읽기'의 시간이 있어야 '쓰기'의 시간으로 이어짐을 일관되게 말했다. 빠져들어 들었다. 빠트리지 않고 메모하며 연신 ppt를 카메라에 담았다.


북토크가 끝나고. 현장을 스케치하려 자리를 지킨,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여성 담당자분이 대표님과 작가님께 지켜본 소감을 말씀하신 후, '2026 문학나눔 북토크'에 대해 길게 설명했다.


이 행사는 10월, 11월. 전국 열다섯 곳의 바카라방에서 열리며. 먼저 바카라방이, 각 바카라방의 성격에 맞는 작가님을 선점해 진흥원에 신청을 하면, 추첨을 통해 열다섯 곳을 선정해 지원하게 되는데. 서울은 <게으른 오후> 포함 2곳이었고 오늘이 그 첫 스타트라고 했다. 끝으로. 과거 문화관광부 시절 '우수 도서'라는 이름으로 선정되던 바카라은 현재 '세종 도서'와 '문학나눔 도서' 두 트랙으로 나뉘어 선정된다고 했다.


진흥원 담당자와 행사 담당자가 차를 타고 돌아가고. 둘만 남은 자리에서 그간의 일에 대해 아주 짧게 언급했다. 대표님의, 젊은 날 육아와 일하는 여성의 애환을 역시 짧게 듣다가. 매주 수목, 대안학교 글쓰기 강의로 두 달간 바카라방 문을 닫는 것이 영 맘에 걸린다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제가 하루 봐도 될까요? 공간에 대한 사심을 덜컥 드러내 버렸다. 정말요? 저야 그래 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오셔서 바카라도 보시고 글도 쓰시고. 공부하셔도 되고. 편히 있다 가세요.


그리하여 북페어로 파주에 출장 가신 오늘. 역사적인 '바카라방지기' 첫날을 보내고 있다.


다다다닥. 다다다닥. 블루투스로 연결한 키보드를 휴대폰과 연동해 글을 쓰는 기분. 이렇게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남편에게 바카라방 사진을 찍어 보냈다. 돈 많이 벌어서 나 이런 거 하나 차려 줘. 하하하하 맘에 드나 보네. 그래 차려 줄게. 빈말은 하지 않는 남편에게 살짝 삐졌다.


우우우웅. 부우우우웅. 두우우웅. 위이이잉. 차종에 따라 골목을 지나가는 차 소리가 다르다. 유리문에 붙어 있는 '인생 독서*인생 서점' 초록 포스터와 '2026 문학나눔 북토크' 연베이지, 진초록 포스터 아래로. 느릿느릿 걷는 사람들의 두 발이 왼쪽 시야에 들어왔다 사라진다.


꿈결같은 시간이 고흥에서는 물론 서울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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