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파리에서 초록색이 사라지는 게 보이지?
시각보다 청각이 먼저였다. 난데없는 질문이 근린공원 언덕에서 들려왔다. 대엿 살, 여남은 명의 어린이집 아이들이 빙 둘러선, 작은 원의 시작점에 노란 조끼를 입은 숲 해설사 선생님이 세 장의 나뭇잎을 든 채 말하고 있었다. 두 발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와중에도 쫑긋 선 토끼 귀는 선생님의 다음 말에 머물렀다.
-잎들도 겨울이 가까워 오니까 더 이상 파랄 필요가 없어서 색이 이렇게 변하는 거야.
가장자리가 톱니로 오돌토돌한 느티나무 세 잎이 초록색, 노란색, 붉은색으로 저마다 다른 빛을 내고 있었다. 그 선명한 색 대비에 문득 '보시(布施)'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낙엽은 보시 중이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며, 제 마지막을 아낌없이 내어 주고 있었다.
이파리에서 초록색이 사라지는 게 보이지. 그 말이 자꾸만 곱씹어졌다. 광합성 가동을 서서히 멈추어 가는 나뭇잎이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명도와 채도를 달리해 제 몸을 매달고 있는 잎들을 자주. 오래. 바라보았다. 너무 많은 소리와 너무 많은 말들이 속에서 웅성거렸다.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들이. 한바탕 부는 바람에 수런대며 떨어지는 낙엽처럼 자꾸만 자꾸만 발밑에 쏟아졌다.
-정말 안 쓸 셈이야?
눈앞에 툭 떨어진 채근의 말에. 쓸 거야. 나라고 생각이 없겠어. 했다가 정말 그래도 돼? 속엣말을 덧붙였던가. 그 말에 남편의 얼굴이 일순간 심각해졌던가.
답보 상태의 박사 논문은 잊을 만하면 리바이벌되었다. 끝을 내야지와 꼭 끝을 내야 하나 사이를 그네처럼 왔다 갔다 했다.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대학로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산문 부분 시상 중에서였다. 입선이던가, 장려던가. 노랗고 긴 생머리의 한 수상자가 무대에 올라 감격에 겨워 눈물을 펑펑 쏟고 있었다. 식순에 따라 상장을 전달하려던 전남대 국문과 교수는 하염없이 울고 있는 그녀에게 허리를 90도로 굽혀 예를 갖추었고. 이렇게 좋은 날에 왜 우세요. 울지 마세요. 곁에서 지켜보던 아나운서가 수상자를 달래듯 말했다. 멀리서도 은빛으로 반사되어 반짝이는 그녀의 눈물을 넘어다보면서 저분은 정말 원했었나 보다. 지난하게 글을 써 왔나 보다. 몹시 간절했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난?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거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힘든 사람을 도우며 살겠다, 원을 세웠었다. 몇해 전. 이질화된 남북한어로 정착 중 여러 어려움과 차별을 겪는 새터민의 이야기를 소설과 구어 자료로 알게 되었을 때. 또 그 무렵. 딸애가 학교 밖으로 나와 꿈드림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는데 그중에 치유를 위한 글쓰기는 없어 보였을 때. 그리고 정신의학과 의사인 김현수 박사님이 20여 년 전, 신경 다양성 친구들을 위해 만든 성장학교 '별'에서 글쓰기 및 검정고시반 국어 선생님인 '별지기'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근래 블로그에서 접했을 때.
다른 이의 삶을 욕망하고 욕망하고 욕망하느라 좌절하고 좌절하고 좌절했던 지난날이 가을빛에 전생인 듯 부서졌다. 무엇이 되기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 내게. 고운 빛깔로, 흙에 더없는 양분으로 온몸을 내던져 보시하는 낙엽이 계속해서 질문을 쏘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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