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내 차례

by어슴푸레

서늘한 가을 해가 깔딱 넘어갔다. 실지렁이 같은 검은 얼룩이 광택을 잃은 지 오래인 상아색 마룻바닥에 구물구물 기어나온 모습이었다. 탁. 하이그로시 회색 체크무늬의 서랍장을 거칠게 잡아당기자 가운데 서랍이 반쯤 열리다 걸렸다. 갖다 버리든지 해야지. 성가신 마음이 미간에 빗자루 살 모양으로 적치되었다. 오른손을 쭉 뻗어 반쯤 밑이 빠진 서류 더미의 서랍 합판을 더듬었다. 갓 태어난 신생아를 품에 안은 엄마가 빛바랜 산모 수첩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시간을 멈춘 은색 얇은 체인의 손목시계 옆. 네 귀가 닳아 떨어져 나간 규격 편지 봉투 하나가 갈퀴 모양의 오른 손가락에 그러쥐어졌다. 박선영 (앞). 붓펜으로 정성 들여 쓴 선생님의 편지였다. 그대로 바닥에 앉아 봉투에서 편지를 꺼내 읽었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2년이 채 되지 않은 때였다. 장례식장에서 돌아와 자려고 매트에 누웠을 때 홀린 듯 일어나 그 편지를 찾아 읽었었다. 그것은 내 식의 애도였다. 선영아, 너는 시를 써야 해. 선생님의 육성이 메아리치듯 울려왔다. 일주기가 지나는 동안 나는 선생님의 편지를 잊었다.


매일매일 걸었다. 걷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벚꽃이 지고 가느다란 회색 나뭇가지에 여린 연둣빛 이파리가 흔들리며 매달릴 때 선생님의 부재가 알아졌다. 그럼에도 잊혔다. 먹고사는 일에 선생님을 잊었다.

그러나 국어가 사람들 마음을 풀어주는 뜨끈한 북엇국 같았으면 좋겠다는 선생님의 시는 잊지 않았다.


선영아, 너는 시를 써야 해.

유언처럼 남긴, 단호한 말이 이따금씩 귓가에 부딪혀 왔다. 눈물로 슬픔을 눙치지 말고, 삶을 피하지 말고, 나를 잊지 말고 기어이 문장으로 세상에 나아가라는 선생님의 당부가.


언어가 언어를 차별하고 언어가 사람을 차별해도. 그것이 제아무리 차갑고 날카로워도. 말에는 사람의 얼어붙은 내장을 녹이는 따스한 온기가 있어야 한다, 시로 말하신 선생님.


손에 편지를 쥐고 딸애를 불렀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백일장이 열린다는데 엄마랑 같이 가지 않을래?

-와, 정말? 응. 갈래, 갈래.

아이의 대답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오전 10시 10여 분께. 백일장의 글제가 색색의 도화지에서 하나둘 펼쳐졌다. 뽕뽕뽕. 동그란 구멍이 연속적으로 파인 초록 휴대용 스티로폼 직사각 방석을 팥죽색 벽돌 바닥에 깔고 앉았다. 딸애가 '사춘기'라는 단어를 원고지 첫 칸에 꾹꾹 눌러쓰기 시작했다. 볼펜심이 사각거리며 백지를 긁어 나가는 소리가 가을 공기를 가르며 맑게 퍼졌다.


멀찍이 딸아이의 동그란 등을 바라보았다. 펜을 쥐고 힘을 주는 손가락의 팽팽한 움직임, 콧잔등에 자잘히 잡힌 주름에서 생명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30여 년 넘게 생활이라는 핑계로 외면했던, 그러나 내 안에도 분명히 살아 숨 쉬고 있던 창조의 열망이었다.


선생님이 내 가슴에 심어 둔, 글의 씨앗은 죽은 것이 아니었다. 숨을 죽이고 싹을 틔울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다시 읽은 선생님의 편지에서 나는 보았다. 허무는 퇴색되었다. 그 흔적을 따라, 마침내 죽은 생이 다시 뜨겁게 약동하기 시작했다.


이제 내 차례였다. 북엇국 같은 시를 쓸 바로 내 차례.


ps. 비록 수상작 안에는 들지 못했으나 세 시간여 원고지에 글을 쓰며 가을을 만끽했다. 중고등학교 이후 성인이 되어 처음 참가한 제44회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딸애와의 추억에 아름다운 그림 하나 더 생겼다.


#혜화#마로니에여성백일장#400편가까이의시와400편이훌쩍넘는산문100여편이넘는동시동화가현장에서쓰여졌다#내년을기약하며오늘을기록한다#심사총평에혹했다최종발표에깊은아쉬움을#가을#나들이#일상#글쓰기#육아#쓰는사람#이젠정말시를써야겠다#그리운조찬용선생님#수원#영복여중#소싯적상좀탔던화홍문화제백일장#지금은화성문화제백일장이지#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