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에서의 마지막

by어슴푸레

6주. 꿈같은 고흥 살이가 끝났다.


19일 토요일 아침. 까만 스타리아에 이삿짐을 거의 다 싣고 욕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언니! 부르는 소리가 났다. 이모, 문 열어 드려. 딸애에게 말하고 서둘러 인디핑크색 고무장갑을 벗고 현관으로 나갔다. 먼 길 가는데 줄 건 없고 이거라도 가면서 먹으라고요. 앞집 동생이 건넨 흰 쇼핑백 속엔 전날 밤 쪘다는 계란 여섯 알, 골고루도 싼 포도주스, 사과주스, 토마토주스 3종 파우치, 동글동글 노랗고 푸른 청귤 꾸러미로 소담했다. 언제 이런 걸 다. 잘 먹을게, 고마워요. 감사함을 담아 눈을 맞추자 동생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와 딸과 나를 차례로 안았다.

18일 금요일 오전. 송별회 겸 나들이 겸 동생의 차를 타고 외출을 했다. 아이 학교에 들러 서류를 주고받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데 국어 선생님께서 아이를 위해 시를 썼다면서 2층에 가서 같이 보자셨다. 손수 화선지에 붓으로 옮긴 시를 오래도록 읽었다. 글 쓰는 제자로 키우고 싶었는데 많이 아쉽습니다. 저도 많이 아쉽습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선생님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교장 선생님, 교무부장 선생님께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 동생 차로 분청문화박물관에 갔다. 같이 수강 신청했다 부득불 취소해 버린 6회기 나만의 분청사기 만들기 무료 강좌의 포스터가 벽면 여기저기에 붙어 있었다. 1층을 둘러보고 정원으로 나갔다 반대편 문으로 들어와 2층으로 올라갔다. 문화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느릿느릿 전시를 관람했다.

다음으로 차를 돌려 향한 곳은 고흥만 근처의 농가맛집이란 식당이었다. 소고기버섯전골과 제육볶음이 정갈하고 깔끔했다. 동생은 밥을 먹여 보내고 싶었다며 카운터 앞에서 등을 보였다. 그럼 커피는 내가 살게요. 좋아요. 7분쯤 걸려 용동해수욕장 앞에 그림같은 바다가 펼쳐진 용동카페테리아에 도착했다.

16일 자정에서 17일 새벽이 되는 시각. 언니, 잠 안 오면 애들 재우고 맥주 한잔해도 돼요. 톡에 화답하듯 사과맥주 한 캔을 들고 동생 차에서 만났다. 힘들었던 지난 이야기와 육아 동지로서의 공감을 나누며 깊어 가는 밤을. 우리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못내 아쉬워했다. 예원인 하고 싶은 게 뚜렷하고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걸 정확히 알고 있잖아요. 그러니 아무 걱정 말아요. 동생의 그 말에 힘이 저 아래에서부터 차올랐다. 언니가 건강한 생각을 하는 분이어서 다행이에요. 자리를 파하고, 도착해 있는 동생의 톡을 여러 번 읽었다.


고흥에서 지내는 동안 앞집 동생에게 너무 많은 배려와 사랑과 위로와 지지를 받았다. 언니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수줍게 웃으며 건넨 채반과 그 위에 예쁘게 담긴 김밥이 눈앞에 선하다.

서울로 이사한 지 사흘째. 동생이 사진을 보내왔다. 오래도록 안부를 묻고 마음을 전하고 신뢰를 보냈다. 올라오던 날 눈물을 흘리던 은아의 얼굴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ps. 앞집 동생 이름이 은하가 아닌, 은아임을 서울에 돌아와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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