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안녕

by어슴푸레

-알람 안 맞추고 잤어?

-4시 반으로 맞췄는데. 작은애 깨우다 깜빡 잠들었어.

-몇 시에 잤길래.

-2시.

-어이쿠. 교열 다 끝내서 보내느라?

-응. 세수만 하고 바로 준비할게.

-어.


오전 5시 반. 남편이 나를 깨웠다. 일찍 일어나 음식물 쓰레기통도 씻어 엎어 놓고, 생활 쓰레기통도 비워서 봉지 묶어 내놨어야 했는데. 옷가지도 짐가방에 챙겨 넣고 냉장고에서 김치랑 음료수, 과일을 꺼내 아이스팩에 넣어야 하는데. 바쁜 와중에 체크, 체크, 체크.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갔다.


큰애와 남편이 엘리베이터로 짐을 하나둘 옮겨 차 트렁크와 뒷좌석에 빠짐없이 싣는 동안 부엌과 거실과 안방과 욕실을 1분 간격으로 왔다 갔다 했다. 음식물 쓰레기통 세척과 쓰레기 봉지 배출은 서울로 돌아와 해야 할 남편 몫으로 남겨 둔 채 코코아색 반원형 가죽 백을 어깨에 메고 딸애에게 말했다. 준비됐어? 이제 갈까?


아침 출근 시간의 혼잡을 피하기 위해 서두른 결과. 6시 반이 좀 안 돼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방화동을 떠나 있을 현실이 아직도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1년 시골살이처럼 마음 편히 다녀오라던 윤기의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사라졌다.


떠나기 열흘 전. 크게 뭔가를 하지 않았으나 자잘하게 분주했다. 그러는 사이 소중한 인연과 작별인사를 하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전화 통화를 하고 메일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2년간 이어온 심리 상담도 지난 화요일에 끝을 맺었다. 영등포 신세계에서 윤기를 3년 만에 만났고. 하이볼에 채소찜을 먹으며 지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고군분투한 엄마의 삶이 서로 다르지 않음에 깊이 공감했다. 이대로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을까. 반포 쪽이 집임에도 김포공항역까지 같이 전철을 타고 이런저런 스몰 토크를 이어 갔다.


-한 번쯤 찾아와 주실 법도 한데. 꿈에 한 번도 안 오시네.

-나오면 오히려 선영이가 힘들어하고 마음 아파할까 봐 안 오시는 거 아닐까.

-그럴 수도. 남편도 똑같이 말하던데. 선생님은 내 정서적 아버지셨는걸.

-응. 그래도 이 세상에서 제일 너를 사랑하는 분은 아버지라는 거 알지?

-알지.


33년 죽마고우란 이런 것. 다 말하지 않아도 친구의 심연을 짐작해 내는 더없이 고마운 사람.


-부모님께 농촌 유학 가는 거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어. 난 안 하고 싶고. 남편은 이야기하는 게 좋겠대고.

-부모님도 당신들 힘든 거 말하지 않잖아. 걱정할까 봐 그러시는 거겠지만. 부모 자식 간이어도 가정을 이루고 사는 독립된 존재이니. 나는 말씀 안 드리는 게 맞다고 봐.

-응. 나도 같은 생각이긴 해. 난 우리 애를 지키고 싶어. 가시 돋친 말로 상처받게 하고 싶지 않아.

결국 두 분께 그 어떤 말도 없이 이사를 나왔다. 그 사이 아버지로부터 문자가 왔었다. 10만 원 송금. 날 더운데 닭 사다가 삼계탕 해 먹어라. 순간 두 눈이 뜨거웠다.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고 답장을 했다. 고맙습니다. 맛있게 잘 해 먹겠습니다 . 무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부녀간 문자메시지라고 보기엔 다소 거리감 있게.


그러다 생각나 버렸다. 어느 날엔가. 잘 지내고 있는고. 양파랑 갈치 보낼 건데 내일 집에 있느냐 전화로 물으셨던 것이. 작년 용역 사업비 입금 날짜가 한 달 미뤄지는 바람에 큰애 제주도 수학여행비와 대학원 2학기 연구 등록비가 펑크 났을 때 당신 주식 털어서 입금해 주시고는 더 말을 잇지 못하는 내게 너 우냐? 하며 속상해하셨던 것이.


그런 아버지께 2년의 시간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그려 보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부모가 되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고. 다시 부모가 되어 자식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어른으로 성숙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쪽에도 저쪽에도 다 말하지 않는 것은 차마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아닌. 제 삶을 의연하고도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려는 것이라는 것도.


윤기를 만나고. 주가 지나서는 윤희 샘과 점심을 먹었다.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는 전폭적인 사람. 사전팀에서 유일하게 연을 이어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 날. 이제 전 온라인 게임 동료인걸요 대수롭지 않게 한 말에 정색하며 말했다. 전 온라인 게임 동료라니요. 동생이죠. 친한 동생. 그 말이 참 고마웠었다.

이 외에도 고마운 사람들이 곁에 많다. 밥도 안 먹이고 어떻게 내려보내니? 일부러 전화하신 지도 교수님. 아무 걱정 말고 잘 쉬고 오라던 게으른 오후 전미경 대표님. 농촌유학마을 근처의 분위기 좋은 카페와 펜션 등을 공유하며 한 번씩 안부 물어 오는 이수미 선생님. 시원해지면 꼭 한번 오라신, 돌아가신 조찬용 선생님의 사모님. 짧지만 깊은 인연에 감사하다는 황연주 기초 교리반 40기 대표님. 좋은 곳에서의 새 생활을 응원한다는 광해 스님. 우리 네 식구의 평안과 건강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최영경 마음플러스 원장 선생님. 그곳에서 가장 힘들 사람은 엄마일 테니 서로 잘 지내라며 눈물 보이셨다는 삼정중 교감 선생님. 심각함 없이 소소한 이야기로 늘 마음 편히 해 주는 하라 언니. 언제 내려오냐며 톡 면면이 설렘과 기쁨을 가득 뿌려 놓는 영희. 그리고 언제나 따뜻이 나를 지켜보는 경신 샘과 현주 샘.


오전 10시 53분. 구례순천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는 길. 도착지가 어느덧 한 시간 앞으로 다가와 있다.


새 삶이 시작되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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