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AI 디지털 리터러시에 관한 강연을 듣기 위해 약속된 장소로 부지런히 걷던 중이었다. 골목 모퉁이를 돌자 눈에 들어온 노란 꽃집.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띄엄띄엄 붉은 자태로 창을 마주한 화분, 꽃다발, 꽃바구니의 한 뼘쯤 위에 카네이션 그림이 그려진 카드가 빳빳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아....... 오늘은....... 그제야 스승의 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음 한 켠이 아렸다. 닿을 수 없는 메시지. 보낼 수 없는 카네이션. 선생님의 부재 앞에서 선생님의 존재성을 느꼈다.
집에 돌아와 핸드폰을 열었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만 1년이 되기 전. 아마도 지난겨울부터. 카톡 대화 목록에 떠 있던 선생님의 성함은 '(알 수 없음)'으로 표시되었다. 나의 휴대폰엔 선생님의 번호가 저장돼 있음에도. 내 마음속엔 여전히 선생님이 살아 계심에도. 도저히 채팅 방 하단의 빨간색 '채팅 방 나가기'를 누를 수 없어 그대로 두었고. 늘어나는 채팅 목록으로 '(알 수 없음)'의 선생님은 맨 아래로 밀려났다. 그 덕에 내게는.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 목록을 오른손 집게손가락으로 고집스레 스크롤하는 버릇이 생겼다.
카톡 창을 내리고 휴대폰 왼쪽 하단의 메시지 아이콘을 눌렀다. 오른쪽 상단의 돋보기를 눌러 사모님을 입력했다. 작년 9월. 두 번째 바카라이 나오고 댁으로 보내 드리며 주고받았던 인사가 눈에 들어왔다. 5월에서 9월. 9월에서 이듬해 5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모님은 어떤 시간을 보내셨을까. 한번 찾아뵈어야겠다 여러 번 생각했지만 끝내 그러지를 못했다. 나는 선생님의 부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5월 초 성결대 특강이 끝나고. 서울 방향이 아닌 수원 방향으로 전철을 탈까 잠시 고민했었다. 화서역에 내려 잠시라도 일월공원을 걷고 저수지를 바라보며 선생님을 추모하고 올까 생각했었다. 아니. 오전 10시. 1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신길역 3번 플랫폼에 서 있을 때부터 이미 마음먹은 바였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선생님이 계시지 않는 수원에 다시 가는 건.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사모님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핸드폰을 닫았다. 쓸쓸했다. 더 이상의 말을 찾기 어려웠다.
그리고 오늘. 약사사에 다녀왔다. 선생님이 떠나신 지 1년이 되는 날이기에 기도를 올리고 싶었다. 법당에 들어가 좌복을 챙겨 지장보살 앞에 섰다. 삼배를 올리고. 절을 하기 시작했다. 1배. 2배. 3배. 4배. 5배. 그러다 엎드려 일어나지 못했다. 흐르는 눈물이 중력을 거슬러 눈두덩으로 올라 붙었다. 감정이 휘몰아치고. 가슴이 꽉 막히다가. 참지 못한 울음이 목 밖으로 터져 나왔다. 선생님과의 30여 년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환하게 웃으시는 영정 속 얼굴이 불현듯 떠올랐다.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눈물이 뚝뚝뚝뚝. 뚝뚝뚝뚝. 뚝뚝뚝뚝. 좌복에 차갑게 떨어졌다.
마음을 추스리고 법당을 나왔다. 둘레길을 따라 산을 내려오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젖었다. 평생 편찮으셨으니 이승은 오만 정이 떨어지셨겠지. 한 번을 꿈에 오시지 않는 선생님껜 그게 좋은 일이야. 선생님의 영가는 아직 쉬고 계실까. 다 쉬고 이승에 오셨을까. 아니면 극락정토에 태어나셨을까. 그 순간 하얀 나비가 눈앞에 팔랑팔랑 날아들더니 파동을 그리듯 멀어져 갔다. 나비는 영혼이라는데. 날아가는 나비를 보며 말했다.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흐르는 계곡물에. 햇살이 부서지는 나뭇잎에. 소담히 피어 있는 난초에. 떨어져 말라 가는 아카시아 꽃잎에. 들려오는 새소리에. 마음을 내맡기며 걸었다. 선생님의 1주기를. 그렇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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