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일. 경남대 국어교육과에 특강이 있었다. 3월쯤 김수정 교수의 제안을 받았으나 하루가 멀다 하고 다채롭게 생기는 일들에 전혀 신경을 못 쓰다, 전 주에 잡힌 5월 4일 성결대 국문과 특강을 준비하면서 같이 강의 자료를 만들어 미리 보냈었다. 월요일 점심. 마산역에 내려 한 노포에서 황태해장국을 먹고 택시를 잡아타 경남대 교육관에 도착했다. 오월의 햇살이 벤치에 부서졌다. 바로 올라가기가 아쉬워 찰칵. 찰칵. 연신 사진을 찍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오시느라 고생하셨죠?
-아. 아닙니다. KTX 타고 편히 왔습니다.
똑똑. 노크를 하고 연구실 문을 열자 김 교수님이 막 피어난 목련처럼 웃으며 나를 맞았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질문을 하셨다.
-선생님의 꿈은 무엇이에요? 국어원 나오신 거 후회하지 않으세요?
-꿈이라...... 딱히 없어요. 그저 저의 쓰임이 있는 곳에 제가 알고 있는 것을 나누며 사는 것 외에는요. 국어원은. 너무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고. 후회하지도 않아요.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글쎄요. 이제는 저의 본성에 반하는 일은 하기 싫어요. 지금이 좋아요.
학부 특강 중간에 송길영 작가의 말을 가져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 중에는 선생님이 되고 싶은 사람도, 연구자가 되고 싶은 사람도,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도,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예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든 저의 생각은 그래요. 어떤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조예가 되고. 조예가 깊어지면 진정성이 생기고. 진정성이 생기면 사람들이 나를 알게 되고. 나를 알게 되면 사람들이 날 찾게 돼요. 내가 아는 것을 사람들에게 기쁘게 공여하고 나누는 삶. 저는 그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 말은 김 교수님의 질문에 대한 긴 답이었다.
대학원 특강에서는 준비한 내용 외에 별다른 메시지를 표하지 않았다. 종일 말을 해서 피곤한 것도 있었지만 20대 중반에서 60대 중반의 대학원생들 표정에서 개개의 진지함과 오라를 느낀 까닭이었다. 목마름이 가득한 눈빛이 간절히 읽혔다. 이 짧은 강연이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전문 지식을 알기 쉽게 풀고 풀어 설명하는 데 메타인지가 계속적으로 요구됐다. 말이 꼬일 때마다 고삐를 고쳐 잡듯 신경 줄을 잡아당겼다.
무사히 강의가 끝나고. 하룻밤을 교수님 댁에서 묵고.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인사를 하고. 서울로 가는 KTX를 탔다. 도착까지 소요되는 세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궁리했다. 온라인카지노 앱을 열어 글을 쓸까. 이어폰을 꽂고 명상 음악을 들을까. 노트북을 열어 공유하기로 한, 코랩 코드들을 정리해 보낼까. 불경을 필사할까.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가슴을 깊이 채우는 감사함을 충만히 느끼고 싶었다. 눈을 감자 두 눈가가 뜨거워지더니 눈물이 또르륵 떨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근원을 향해 예배하고 예배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금강경의 그 구절이 전광처럼 지나갔다. 핸드폰을 열었다. 카지노톡 프로필의 사진을 교체했다. 그리고. 구절을 적었다.
응당 머무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몸으로 와닿는 순간이었다. 눈물이 계속해서 흘렀다.
띠딩. 띠딩. 한 번씩 카톡 알림음이 왔다. 누군가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렀다는 메시지와 함께 다홍색 하트가 이따금 반짝였다. 하나로 연결된 온 우주가 스마트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나가 곧 여럿. 여럿이 곧 하나.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이 다시 머릿속을 스쳤다. 뜨거워진 가슴이 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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