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종교라는 거울에 갇혔는가
1755년 11월 1일 아침 9시 40분, 포르투갈 리스본은 온통 축제의 열기로 들떠 있었다.
가톨릭 교회 달력에서 가장 거룩한 축일 중 하나인 ‘만성절(All Saints' Day, 모든 성인의 날)’이었다. 도시 인구의 대부분인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가장 단정한 옷을 차려입고 시내 서른여섯 곳의 거대한 성당과 수도원으로 모여들었다. 제단 위에는 수천 개의 촛불이 일렁였고, 신자들은 무릎을 꿇은 채 성인들의 가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며 장엄한 성가를 부르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대지가 찢어지는 굉음과 함께 규모 8.5를 훌쩍 넘는 대지진이 리스본을 강타했다.
견고했던 고딕 양식의 석조 성당들이 일제히 큰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무너져 내렸다. 하나님의 은총을 빌며 두 손을 모으고 있던 수만 명의 신자들은 그들이 신성하다고 믿었던 거대한 대리석 기둥과 십자가에 깔려 그 자리에서 으스러졌다. 제단에서 넘어진 수많은 촛불은 무너진 목조 잔해에 불을 붙여 도시 전체를 거대한 화염 지옥으로 만들었고, 불길을 피해 테조강 하구의 부둣가로 뛰쳐나간 생존자들의 머리 위로는 높이 15미터가 넘는 거대한 쓰나미가 덮쳤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리스본 시민 6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도시는 잿더미가 되었고, 바다는 시신으로 뒤덮였다.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들을 더 깊은 광기로 몰아넣은 것은 가족의 죽음이나 육체의 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이 끔찍한 비극이 가장 거룩한 날, 가장 거룩한 장소에서, 가장 경건하게 기도하던 사람들에게 닥쳤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이었다.
자연은 선악을 구분하지 않는다. 지각판의 단층이 부딪히며 뿜어낸 에너지는 성당 안에 무릎 꿇은 독실한 수녀와 시 외곽 사창가의 매춘부를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깔아뭉갰다. 지진에는 아무런 감정도, 원한도, 목적도 없었다. 그것은 무자비하며 맹목적인 지구 물리학적 운동에 불과했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제들과 민중의 마음은 그 차가운 물리적 우연을 맨 정신으로 마주할 수 없었다.
이 거대한 참사가 그저 ‘아무런 이유도 없는 우연한 비극’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우주는 의미를 상실한 텅 빈 암흑으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에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무의미의 절벽을 마주했을 때 훨씬 더 심각한 근원적 공포를 느낀다.
그래서 리스본의 교회 지도자들은 기괴한 심리적 탈출구를 찾아냈다. 그들은 거리로 뛰쳐나가 피를 흘리며 울부짖는 시민들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세월호 사건 때 같은 맥락의 말을 했던 목사의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것은 자연의 재앙이 아니다! 우리의 가증스러운 음란과 오만함에 분노하신 하나님께서 내리신 거룩한 심판이다! 회개하라!"
사제들은 폐허 한가운데에 제단을 쌓고 살아남은 자들에게 채찍질을 요구했다. 심지어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기 위해 도시 곳곳에 임시 교수대를 세우고, 불경한 죄를 지었다고 지목된 이단자들과 죄수들을 줄줄이 매달았다.
동시대의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가 <리스본의 재난에 관한 시>를 통해 "무너진 제단 아래 으스러져 피 흘리는 저 젖먹이 아이들이 파리나 런던의 아이들보다 더 큰 죄를 지었단 말인가?"라고 절규하며 하나님의 정의를 통렬하게 질문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대중은 사제들의 말에 매달려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쳤다.
왜 인간은 자신을 짓밟은 잔혹한 파괴자를 향해 분노하는 대신, "내가 죄를 지어 벌을 받은 것"이라며 스스로를 비하하는 쪽을 택하는가?
자연의 침묵과 부조리를 견딜 수 없는 인간의 무의식은, 차라리 ‘나를 벌하는 무자비한 신의 의도’를 날조해서라도 세상이 어떤 인과관계의 통제 아래 굴러가고 있다는 환상을 붙잡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종교라는 환각이 인간의 마음을 포섭하는 첫 번째 심리적 덫이다.
인간의 마음이 왜 이토록 앞 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자기기만에 취약한지를 과학적으로 증명해 낸 결정적인 실험이 있다. 1966년 미국 캔자스 대학교의 슬롯심리학자 멜빈 러너(Melvin Lerner)가 설계한 악명 높은 심리 실험이다.
러너는 실험 참가자들을 한쪽 방향에서만 들여다볼 수 있는 특수 거울(One-way mirror) 방으로 안내했다. 거울 너머 방에는 한 여성이 의자에 묶인 채 기억력 테스트를 받고 있었다. 실험자는 참가자들에게 이 여성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고통스러운 전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험이 시작되자 참혹한 광경이 펼쳐졌다. 여성이 오답을 낼 때마다 전류가 흘렀고,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비틀었다. 의자를 쥐어뜯고 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여성의 모습이 유리벽 너머로 생생하게 중계되었다.
처음에 이 광경을 지켜보던 관찰자들은 극심한 불안과 동정심을 보였다. 그들은 주먹을 쥐고 안절부절못하며 여성이 겪는 고통에 깊이 공감했다.
그러나 실험이 계속되고 자신들이 그 끔찍한 고통을 멈추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깨닫게 되자, 관찰자들의 태도에서 끔찍한 심리적 반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관찰자들은 점점 고통받는 여성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마침내 그녀를 인격적으로 깎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저 여자는 집중력이 너무 떨어져." "문제를 풀려는 의지 자체가 없어 보여." "태도가 굼뜨고 멍청하니까 저런 벌을 받는 거지. 자업자득이야."
무고하게 고문당하는 피해자를 돕거나 상황을 바꿀 힘이 없을 때, 인간의 뇌는 "세상은 무고한 사람에게도 끔찍한 고통을 안기는 불공정한 곳"이라는 진실을 회피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고통받을 만한 숨은 결함이 있을 것’이라고 현실을 왜곡해 버렸다.
러너는 이 현상을 가리켜 ‘공정한 세상 가설(Just World Hypothesis)’이라 명명했다.
인간에게는 "세상은 근본적으로 정의로우며, 선한 자는 복을 받고 악한 자는 벌을 받는다"는 질서에 대한 강박적인 믿음이 내재되어 있다. 이 질서의 환상이 깨어지는 순간 자아가 붕괴하기 때문에, 인간은 부조리한 비극 앞에서도 우연을 인정하지 못하고 가상의 인과관계를 조작해 낸다.
성서의 욥기를 보라. 아무런 잘못도 없이 하루아침에 자식들을 모두 잃고 온몸에 악창이 번져 기와 조각으로 살갗을 긁고 있는 욥을 찾아온 세 친구들의 태도는 멜빈 러너의 실험실에 앉아 있던 관찰자들과 정확히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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