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과학과 정보이론이 밝혀낸 착각
앞에서 다룬 다양한 진실 앞에서 모든 지적 방어선이 무너져 내린 신앙인이라 할지라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방어선이 하나 남아 있다. 그것은 어떤 과학적 논문이나 역사적 사료로도 반박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내면의 생생한 영적 체험’이다.
"우주가 정교한 물리 법칙으로 돌아가고, 성서가 인간의 손으로 짜깁기된 바카라이라 한들, 내가 골방에서 무릎 꿇고 기도할 때 흘렸던 그 뜨거운 눈물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던 형언할 수 없는 평화와 전율, 내 등골을 스치며 지나가던 거룩한 임재의 감각마저 거짓이란 말인가?"
이 질문은 당연하고 정직하며, 그들이 느낀 감정의 파동 또한 결코 거짓이 아니다. 그 전율은 연극도 아니고 누군가를 속이기 위한 사기극도 아니다. 신자들의 뇌파를 측정하고 호르몬 수치를 검사해 보면, 그들이 신을 마주했다고 믿는 순간 심박수는 요동치고 뇌의 특정 부위는 대낮처럼 밝게 점등된다. 그 경험은 의심할 여지없이 실재하는 생물학적 사건이다.
그러나 질문의 방향이 틀렸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그 체험이 진짜인가"가 아니라, "그 강렬한 체험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이다.
인간의 두개골 안쪽을 들여다보라. 무게 약 1.4킬로그램, 젤리처럼 물렁한 이 신경세포의 덩어리는 평생 단 한 번도 바깥세상의 햇빛을 직접 본 적이 없다. 두껍고 단단한 뼈의 암실 속에 갇힌 채, 뇌는 바깥에서 밀려드는 소리를 직접 듣지도, 바람을 직접 느끼지도 못한다. 뇌가 바깥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는 시신경과 청각신경을 타고 번개처럼 쏘아 올려지는 미약한 전기 신호들과 신경전달물질의 화학적 소용돌이뿐이다.
인지과학과 정보이론이 도달한 현대 과학의 정확한 결론은 이것이다. 신은 저 높은 하늘의 옥좌에 거하지도, 성전의 제단 뒤에 숨어 있는 것도 아니다. 신은 외부에서 침투한 초자연적 영적인 바람이 아니라,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두운 두개골의 동굴 속에서 인간의 뇌가 스스로 연출해 낸 가장 웅장하고 정교한 ‘인지적 가상현실 시뮬레이션’이다.
이 거룩한 착각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수십만 년 전, 아프리카의 메마른 사바나 초원으로 되돌려야 한다.
땅거미가 짙게 깔리는 황혼 무렵, 키 큰 풀숲 사이를 홀로 걸어가던 우리 조상 영장류를 떠올려 보자. 갑자기 등 뒤의 수풀에서 "바스락" 하는 희미한 소리가 들려온다. 시야는 흐릿하고 정보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때 원시인의 뇌는 생존을 위해 잠깐의 순간에 단 하나의 판단을 내려야 한다.
선택할 수 있는 가설은 두 가지뿐이다. 첫째는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스친 소리다"라고 판단하는 것이고, 둘째는 "풀숲 뒤에 나를 물어 죽이려는 표범이 숨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여기서 진화의 확률 게임이 시작된다. 만약 그가 "표범이다!"라고 지레 겁을 먹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도망쳤는데, 알고 보니 그저 산들바람에 불과했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는 약간의 칼로리를 낭비했고, 혼자 놀라 가슴을 쓸어내렸으며, 동료들에게 겁쟁이라고 놀림을 받았을지 모른다. 통계학에서는 이를 '거짓 양성(False Positive)', 즉 헛다리를 짚은 오류라고 부른다. 이 착각이 치러야 하는 대가는 지극히 사소하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를 상상해 보라. 굶주린 표범이 웅크리고 있는데, "그냥 바람이겠지"라며 태평하게 걸음을 옮겼다면 어떻게 되는가. 통계학에서 말하는 '거짓 음성(False Negative)', 즉 치명적인 방심의 오류다. 이 판단의 대가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는 것이며,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할 기회를 영원히 박탈당하는 것이다.
자연선택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것은 누구였겠는가.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충분한 증거가 모일 때까지 기다리던 사색가들은 사바나의 맹수들에게 모두 잡아먹혔다. 백 번 중 아흔아홉 번 헛다리를 짚어 헛걸음을 치더라도, 단 한 번의 표범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모든 바스락거림 뒤에 '나를 노리는 의도를 가진 존재'가 숨어 있다고 과민하게 반응하던 편집증적인 겁쟁이들만이 살아남아 우리의 조상이 되었다.
진화생물학자 랜돌프 네스(Randolph M. Nesse)는 이를 ‘화재경보기 원리(The Smoke Detector Principle)’라고 불렀다. 화재경보기는 음식이 조금 타서 연기가 날 때마다 시끄럽게 울려 사람을 짜증 나게 만들지만, 진짜 불이 났을 때 침묵하는 것보다는 오작동을 백 번 일으키는 편이 생명을 구하는 데 훨씬 안전하다. 자연선택은 인간의 뇌를 성능 좋은 민감한 화재경보기처럼 세팅해 놓았다.
인지과학자 저스틴 배럿(Justin L. Barrett)은 이 생존 기제에 ‘과잉 행위자 탐지 기제(HADD, Hyperactive Agency Detection Device)’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간의 뇌는 물리적인 현상을 마주할 때조차 무의식적으로 그 배후에 마음과 목적, 의도를 가진 보이지 않는 행위자를 기어이 찾아내도록 진화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면 번개의 정전기적 방전을 생각하기 전에 "하늘의 누군가가 분노했다"고 느끼고, 극심한 가뭄이 들면 공기층과 기압의 배치를 계산하기 전에 "대지의 신이 우리를 벌하고 있다"며 무릎을 꿇는다.
신과 정령, 악마와 천사는 깊은 영적 묵상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밤안개 속에서 포식자의 날카로운 이빨을 피하기 위해 인간의 뇌 신경망에 깊게 각인된, 가장 원초적인 생존 레이더가 뿜어낸 불가피한 부작용이자 진화적 찌꺼기였다.
행위자를 상상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혼돈 속에서 기어이 익숙한 질서를 찾아내고야 마는 기괴한 강박증을 앓고 있다. 회의주의 학자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가 명명한 ‘패턴성(Patternicity)’이라는 현상이다.
뇌는 본질적으로 무작위성과 소음을 끔찍하게 견디지 못한다. 정보가 불확실할 때, 뇌는 기억 저장소를 맹렬히 뒤져 그 무질서한 데이터 조각들을 어떻게든 그럴듯한 인과관계의 이야기로 꿰어 맞춘다.
가장 흔한 사례가 바로 모호한 시각 정보 속에서 사람의 얼굴을 찾아내는 ‘변상증(Pareidolia)’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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