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신의 필체는 없다

고고학과 문헌학이 밝혀낸 성스러운 바카라들의 민낯

by강훈

오랫동안 모든 종교가 구축해 온 신성함의 최후 보루는 언제나 ‘바카라’, 바로 ‘경전’이었다.

눈앞에서 기적이 자취를 감추고 광활한 천체의 운행이 물리학의 법칙 아래 질서를 잡아가던 근대의 문턱에서도, 신자들은 가슴팍에 품은 묵직한 가죽 장정의 바카라 한 권을 쓰다듬으며 안도했다. 이 바카라에 적힌 글자들만큼은 인간의 불완전한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천지를 지으신 절대자가 필경사의 손을 빌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시한 ‘오류 없는 진리의 원본’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신학에서는 이를 ‘축자영감설(Verbal Inspiration)’ 혹은 ‘성서무오설’이라 불렀다.

문명마다 교리와 언어는 달랐으나, 경전을 대하는 태도는 닮아 있었다. 기독교는 성서의 글자 하나와 쉼표 하나까지 하나님의 거룩한 숨결이 깃들어 있다고 선언했고, 이슬람은 쿠란을 인간의 손을 전혀 타지 않은 채 하늘 옥좌 곁에 보관되어 온 영원불멸의 원형을 천사 가브리엘이 무함마드에게 직접 전달한 바카라이라 못 박았다. 동양의 불교 경전들 역시 첫머리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라는 뜻의 ‘여시아문(如是我聞)’ 네 글자를 내걸어, 뒤이어 전개되는 난해한 형이상학이 역사적 붓다의 입에서 직접 쏟아져 나온 이야기임을 보증하려 애썼다. 힌두교 또한 베다를 인간이 지은 문학이 아닌, 고대 현자들이 우주의 원초적 파동을 그대로 받아 적은 신성한 계시, 즉 ‘슈루티(Shruti)’로 묶어 성역에 올렸다.

“경전에 기록되었으되.”

이 한마디는 수천 년간 인류 문명에서 그 어떤 의문도 허락하지 않는 가장 강력한 지적 최면술이었다. 왕들은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경전을 펼쳤고, 사제들은 십일조와 조세를 거두기 위해 성스러운 활자를 방패 삼았으며, 정복자들은 피정복민의 땅을 빼앗고 자유를 결박하며 경전의 문장을 휘둘렀다. 경전은 신의 목소리로 둔갑한 지배자들의 마스터키였고, 그 권위에 감히 돋보기를 들이대는 자에게는 가차 없이 이단이라는 낙인과 화형대의 불길이 되돌아왔다.


그러나 19세기 중반부터 사막의 지표면 아래를 파고 들어간 고고학자들의 삽과, 낡은 양피지의 잉크를 현미경 아래 올려놓은 문헌학자들의 렌즈는 이 거룩한 신화의 심장을 정면으로 관통했다. 흙먼지를 털어내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하늘에서 순결하게 내려온 신의 필체가 아니었다. 그곳에는 주변 이민족의 신화를 베껴 쓰고, 왕권과 사제 계급의 기득권을 위해 문서를 가위질해 오려 붙였으며, 살아 숨 쉬던 인간 스승의 급진적 목소리를 체제 순응적인 신화로 고정해 버린 고대인들의 적나라한 정치적 편집의 흉터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신성한 텍스트의 장막을 찢은 첫 번째 균열은, 메소포타미아의 진흙탕 속에서 건져 올린 깨진 점토판들에서 시작되었다.


1872년 늦가을,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의 한적한 연구실에서 고고학 연구원 조지 스미스는 고대 앗시리아의 수도 니네베 유적에서 발굴된 수천 점의 쐐기문자 점토판을 씻어내며 해독하던 중이었다. 점토판의 먼지를 털어내며 글자를 읽어 내려가던 그의 호흡이 갑자기 거칠어졌고, 연구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입고 있던 외투를 스스로 찢고 고함을 질렀다는 일화가 전해질만큼 그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가 읽어 내려간 점토판 제11판에는 창세기의 노아 홍수 이야기와 토씨 하나까지 판박이인 고대 서사시, 바로 <길가메시 서사시(Epic of Gilgamesh)>가 새겨져 있었다.


신화의 배경은 신들의 짜증 섞인 불면증이었다. 인간들이 지상에서 번성하여 내는 소음이 너무 시끄러워 잠을 잘 수 없었던 최고신 엔릴은 분노하여 인류를 물로 쓸어버리기로 작정한다. 그러나 지혜와 지하수의 신 에아는 인간을 가엾게 여겨, 바빌로니아판 노아라 할 수 있는 우트나피슈팀의 오두막 갈대벽 너머로 비밀리에 속삭인다. “갈대벽이여, 벽이여 들어라. 집을 헐고 배를 지어라. 재산을 버리고 생명을 구하라.”


배를 짓는 공정과 묘사는 창세기의 방주와 믿기 어려울 만큼 일치했다. 목재를 깎고 배의 틈새마다 끓는 역청(비투멘)을 안팎으로 두껍게 발라 방수 처리를 하는 공정, 모든 짐승의 암수를 태우고 마침내 맹렬한 폭풍우가 쏟아져 온 세상이 진흙탕으로 변하는 파멸의 풍경이 고스란히 겹쳤다. 비가 멎은 뒤 배가 산꼭대기에 멈춰 서는 대목에 이르면 모방의 흔적은 숨길 수 없을 만큼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우트나피슈팀은 물이 빠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먼저 비둘기를 날려 보낸다. 쉴 곳을 찾지 못한 비둘기가 돌아오자 이번에는 제비를 날리고, 제비마저 돌아오자 마지막으로 까마귀를 띄운다. 시체를 뜯어먹으며 물이 줄어든 것을 확인한 까마귀가 돌아오지 않자, 그는 마침내 배에서 나와 산봉우리에 제단을 쌓고 향기로운 제물을 불태운다. 이때 점토판에는 지극히 인간적인 묘사가 적혀 있었다. “향기로운 냄새가 퍼지자, 신들이 파리 떼처럼 달콤한 제물 주위로 모여들었다.”


성서 창세기 8장의 기자는 이 고대 신화를 고스란히 가져오면서 단지 다신교의 신들을 가리고 유일신의 이름을 덮어씌웠을 뿐이었다. 비둘기와 까마귀의 비행 순서가 조금 바뀌었을 뿐,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리자 “야훼께서 그 향기로운 냄새를 흠향하셨다”고 적어 내려간 성서의 문장은, 메소포타미아 제단 주위로 파리 떼처럼 몰려들던 고대 신들의 잔치를 히브리식 경건으로 다듬어 낸 문학적 복사물에 지나지 않았다.

홍수 설화가 서사의 차용이었다면, 창세기 1장의 웅장한 창조 기사는 고대 바빌로니아 제국의 건국 신화인 <에누마 엘리시(Enuma Elish)>의 세계관을 그대로 물려받은 우주론적 번안이었다.


‘그때 저 높은 곳에’라는 뜻을 지닌 <에누마 엘리시>는 기원전 12세기경 바빌론의 신년 축제 때마다 낭송되던 거대한 서사시였다. 신화의 절정은 바빌론의 수호신 마르두크와, 혼돈의 원초적 소금물 바다를 상징하는 거대한 암룡 티아마트(Tiamat)의 결투다. 마르두크는 거대한 폭풍을 몰아쳐 티아마트의 입을 찢고 활을 쏘아 심장을 꿰뚫은 뒤, 죽은 티아마트의 거대한 사체를 건어물처럼 반으로 쪼갠다. 그리고 그 가죽의 한쪽 절반을 저 높은 곳에 펼쳐 단단한 하늘 덮개(궁창)로 삼고, 다른 절반으로는 땅의 바닥을 만들어 혼돈의 바닷물이 넘쳐흐르지 못하도록 빗장을 잠근다.


창세기 1장 2절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소리 내어 읽어보면, 신화의 흔적은 화석처럼 선명하게 튀어나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여기서 ‘깊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가 바로 ‘테홈(Tehom)’이다. 고대 근동 셈어 비교언어학은 이 ‘테홈’이라는 단어가 바다 괴물 ‘티아마트(Tiamat)’와 어원적으로 완벽히 동일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음을 밝혀냈다.


신이 허공에 칼을 휘두르듯 궁창(단단한 돔)을 만들어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세계를 갈라놓는 창세기의 우주 구조는, 마르두크가 티아마트의 사체를 쪼개어 물의 범람을 가로막았던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의 평면 우주관을 활자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했다. 빛을 먼저 만들고, 하늘과 바다를 가르고, 해와 달과 별을 제자리에 배치한 뒤 마지막에 인간을 만드는 창조의 순서까지 두 텍스트는 쌍둥이처럼 일치했다.

신화적 서사보다 훨씬 더 결정적으로 성서의 신성성을 무너뜨린 것은, 시나이산의 번개 속에서 하나님이 직접 손가락으로 새겨주었다는 출애굽기의 도덕률과 법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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