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다와 우주적 인과율의 탄생
에게해의 푸른 물결을 바라보던 그리스인들이 설명할 수 없는 삶의 비극 앞에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 탓하며 눈물 흘릴 때, 인더스강과 갠지스강 유역의 인도 아대륙 사람들은 전혀 다른 차원의 자연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곳의 대지는 온화한 지중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살을 태울 듯 내리쬐는 가혹한 건기 뒤에는 대지를 집어삼킬 듯 쏟아지는 몬순의 폭우가 이어졌다. 울창한 밀림에서는 이름 모를 독사와 맹수가 불시에 목숨을 앗아갔고, 찰나의 순간에 피어났다 흔적도 없이 썩어 문드러지는 생명들의 순환은 끝없이 반복되었다.
삶과 죽음의 소용돌이 앞에서 인도 대륙의 사상가들은 단순히 신들의 변덕이나 기분으로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에 만족할 수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삼라만상은 거칠었지만, 동시에 놀라울 정도로 질서정연하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는 어김없이 떠올랐고, 계절은 정확한 때에 바뀌었으며, 씨앗을 뿌린 자리에만 싹이 텄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혼돈 너머에 존재하는 불변의 우주적 법칙을 갈망했다. 그렇게 축조된 인류 최초의 방대한 지적 유산이 바로 <베다(Veda)>였다.
고대 인도 철학이 발견해 낸 첫 번째 우주적 개념은 ‘리타(Rta)’, 즉 만물을 관통하는 보편적 질서였다. 해와 달의 운행부터 대자연의 순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신들의 기분이 아니라 우주 자체에 내재한 정밀한 섭리에 따른다는 자각이었다. 이는 세상을 맹목적인 공포의 대상에서 '관조와 탐구의 대상'으로 끌어올린 인류 지성사의 눈부신 첫 도약이었다. 그리고 이 질서 감각은 인간의 삶과 도덕의 영역으로 확장되며 인류 역사상 가장 정교한 사유의 건축물을 완성했다. 바로 ‘카르마(Karma, 業)’와 ‘삼사라(Samsara, 윤회)’의 체계였다.
오늘날 카르마는 흔히 비극적인 숙명론이나 계급 차별의 수단으로 단순화되어 사용되곤 한다. 그러나 카르마라는 개념이 처음 인류의 뇌리에 각인되었을 때, 그것은 인간에게 깊은 도덕적 바카라임과 주체성을 부여하는 혁명적인 통찰이었다. 그리스 신화가 삶의 비극 앞에서 "그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장난"이라며 질문을 닫아버렸다면, 베다의 사유는 우주가 도덕적으로 무관심하지 않다는 대담한 선언을 내놓은 것이었다.
카르마의 법칙은 명쾌하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으며, 모든 행위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우주적 흔적을 남긴다."
내가 행한 정직과 선행, 타인을 향한 배려와 가해는 우주적 장부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내 삶으로 되돌아온다. 이 절대적인 인과율 앞에서는 그 어떤 권력자나 하늘의 신조차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고통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를 덮치는 맹목적인 폭력이 아니라는 자각은, 혼돈에 질식해 가던 인간에게 "세상은 질서가 있으며, 나의 도덕적 선택에는 영원한 무게가 있다"는 깊은 안도감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모든 고통에 완벽한 인과관계를 부여하려던 이 철학적 집요함은, 필연적으로 불편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불행의 무의미함을 지워낸 자리에 '무한한 죄바카라감'이 들어선 것이다.
선천적인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이나, 기근으로 굶어 죽어가는 가족을 보며 그 누구도 원망할 수 없었다. 가해자는 신도 아니고 슬롯도 아닌, '과거의 나 자신'이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전생의 업보가 오늘의 비극을 빚어냈다는 논리는, 피해자 스스로를 죄인으로 둔갑시키는 가혹한 내면의 감옥을 만들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