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와 계급 질서의 탄생
지중해의 햇살은 눈부시게 푸른 바다를 비추지만, 그 화려한 풍경 아래 놓인 고대 그리스의 대지는 그 아름다움과 다르게 척박했다. 메마른 석회암 돌산은 인간에게 풍성한 식량을 거저 내어주지 않았고, 에게해의 거친 풍랑과 불시에 땅을 뒤흔드는 지진은 공들여 쌓은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집어삼켰다. 이유 모를 전염병이 돌면 가축과 어린아이들이 속수무바카라으로 쓰러져 나갔다.
이 무자비한 환경 속에서 인간을 가장 미치게 만든 것은 육체적 고통 그 자체가 아니었다. ‘왜 하필 나인가’를 알 수 없다는 절대적인 무작위성, 즉 세상이 인간의 선악이나 눈물에는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다는 무의미함이었다.
열심히 땀 흘리며 밭을 갈던 농부나 이웃을 돌보던 선량한 누군가도 가뭄과 해일 앞에서는 똑같이 목숨을 잃었다. 자연은 도덕적이지 않았고, 우주는 인간을 위해 배려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이 예측 불가능한 카오스(혼돈)의 공포를 방치했다면 고대 슬롯는 만성적인 집단 공황에 빠져 자멸했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닥쳐오는 잔인한 현실을 어떻게든 설명해 낼 ‘언어적 방어벽’이 절실했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그렇게 인간의 강력한 생존 본능 속에서 탄생했다.
그리스인들이 고안해 낸 가장 교묘하고 정교한 지혜는, 자연의 잔인한 변덕에 ‘모이라(Moira, 운명)’라는 거룩한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세상이 이유 없이 잔혹하다는 진실은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지만, "이것은 신조차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의 장치"라고 포장하는 순간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아무런 이유 없이 찾아온 재난과 질병이, 갑자기 ‘우주적 질서와 필연성’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질서를 입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 속 올림포스의 신들은 결코 전지전능하지 않았다. 신들의 왕이라는 제우스조차 트로이 전쟁터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이 창에 찔려 죽어갈 때, 피눈물을 흘리며 지켜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운명의 실을 짜고 배분하며 끊어버리는 세 여신(클로토, 라케시스, 아트로포스)이 정해둔 몫은 신의 의지로도 되돌릴 수 없었다.
신들조차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이 절대적인 필연성이라는 운명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에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나에게 닥친 비극이 자연의 무작위적 횡포가 아니라, 우주가 돌아가는 섭리의 일부라고 믿는 편이 차라리 견디기 쉬웠기 때문이다. 신화는 불합리한 재난을 '운명'이라는 질서로 세탁해 냄으로써, 원초적 공포에 떨고 있던 인간의 정신을 위로해 주었다.
그러나 이 탁월해 보였던 심리적 방어 기술은 곧바로 지배 계급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무기로 둔갑했다. 신화가 자연의 불규칙하고 무서운 횡포를 ‘운명’으로 둔갑시키는 데 성공하자, 지배자들은 슬롯적 불평등과 착취 역시 ‘신이 정한 거역할 수 없는 운명’으로 포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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