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했어도 네 성실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퇴사 후 일주일, 벌써 마음이 바빠진 후배에게

기질적으로 참 부지런한 후배가 있다. 대학생 때도 아침 시간을 활용하고 싶다며 오전 7시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던 친구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할 일을 찾고, 생각한 것은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다. 그런 후배가 최근 퇴사했다. 퇴사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집에 서재를 꾸리고, 앞으로 할 일을 찾느라 바쁘다.


그 모습이 참 그답다. 새로운 일상을 스스로 만들어가려는 부지런함은 복되고, 칭찬해주고 싶다. 다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쓰였다. 새로운 시작이 기대되어 움직이는 것이라면 더없이 좋겠지만, 혹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기 어려워 서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후배의 마음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그 부지런함 뒤에 걱정과 불안이 크게 자리 잡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마디를 건네고 싶다.


"너 자신을 조금 믿어봐."


막연히 모든 일이 잘 풀릴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라는 뜻이다. 아침 시간을 그냥 보내기 아까워 일찍 일어나던 사람,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몸을 움직이던 사람, 누가 지켜보지 않아도 자기 몫을 찾아 하던 사람. 회사를 나왔다고 해서 그동안 쌓아온 태도와 습관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회사에 다닐 때는 하루에 해야 할 일이 비교적 분명하다. 출근 시간이 있고, 맡은 업무가 있고, 마감이 있다. 바쁘고 힘들어도 오늘 무엇을 했는지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퇴사하면 그 기준을 직접 세워야 한다. 하루를 보내고도 무엇을 했다고 말해야 할지 애매할 수 있다. 바카라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고민했어도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으면 괜히 하루를 낭비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평소 부지런히 살아온 사람에게는 이런 시간이 더 낯설 수 있다. 늘 해야 할 일을 처리하며 하루를 보냈으니, 할 일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가 편하지 않은 것이다. 잠깐의 여유를 누리다가도 "이렇게 있어도 되나?", "빨리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며칠 쉬었을 뿐인데 어느새 자신이 느슨해진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며칠의 공백으로 지금까지의 자신을 판단할 필요는 없다. 오늘 일찍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그동안의 부지런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 주에 뚜렷한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고 해서 무바카라임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랜 시간 반복하며 몸에 밴 성실함을, 잠시 달라진 일상만으로 의심하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생활비를 점검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일은 필요하다. 다만 퇴사한 지 며칠 만에 다음 방향까지 모두 정해져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는지 살펴보고, 그 안에서 생각할 시간을 정해두어도 된다. 이전 일에서 무엇이 좋았고 무엇이 힘들었는지,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다. 일을 하느라 미뤄둔 일상을 돌보고, 충분히 자고, 건강을 돌보는 시간이 있어도 괜찮다. 쉬는 날까지 반드시 다음 일을 위한 준비로 채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후배가 미래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일하길 원한다. 때때로 그 마음보다 걱정과 불안이 앞선다면, 한 번쯤 물어봤으면 한다. "지금 이 일을 하고 싶은가, 아니면 무엇이든 하고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가?" 행여나 불안을 달래기 위해 급히 시작한 일이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힘을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작하면 열심히 할 사람인만큼, 무엇을 시작할지 고르는 데에도 시간을 써도 좋겠다.


나는 이 후배가 잠시 쉰다고 해서 자기 삶을 쉽게 내버려 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자신을 계속 재촉해야만 그 성실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동안의 자신에게 조금 더 신뢰를 주었으면 한다. 매일 무언가를 해내며 다시 증명하지 않아도, 이미 성실하게 살아온 시간이 있다.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선택을 하든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일이 아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배우고, 선택이 기대와 다르면 다시 살펴보고,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 믿음의 근거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모습에 있다.


후배에게는 그 시간이 있다.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던 날들, 맡은 일을 해내기 위해 애썼던 날들, 스스로 다음 할 일을 찾았던 날들이 있다. 다음 걸음을 고르는 동안 그 시간들이 자신을 믿을 근거가 되어주었으면 한다.


너의 부지런함은 앞으로도 너를 많이 도와줄 것이다. 그러니 퇴사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너에게 다음 삶의 답까지 내놓으라고 재촉하지 않았으면 한다. 잠깐 멈춘다고 네 성실함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동안 성실하게 살아온 너를, 이제 너도 조금 믿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