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되지 않은 역할을 기쁘게 감당하는 법
이번 주부터 한 달간 성가대 지휘를 맡게 되었다. 원래 지휘자님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자리를 비우시게 되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부담스럽다. 나는 음악 전공자도 아니고 성악이나 지휘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도 없다. 지휘법이라고 해봐야 초등학생 때 음악 시간에 배운 것이 거의 전부다. 그동안 성가대에서 성실하게 연습하고, 필요한 일이 있으면 먼저 움직이고,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어쩌다 이 역할까지 맡게 된 것 같다.
사실 지휘가 처음은 아니다. 20대 때도 몇 년간 성가대 지휘를 맡은 적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때는 지금만큼 부담스럽지 않았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유가 있다. 그때는 전문적인 지휘자를 가까이에서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아마추어와 전문가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도 몰랐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그냥 했다. 당시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안정적으로 함께할 반주자가 없다는 것 정도였다. 내 지휘 실력 자체를 고민했던 기억은 별로 없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전문적인 지휘자님 밑에서 오랫동안 노래하면서 지휘자의 역량에 따라 성가대의 소리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게 되었다. 같은 사람들이 같은 곡을 불러도 어디에서 소리를 끌어내고, 어디에서 힘을 빼게 하고, 각 파트의 소리를 어떻게 듣고 조율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악이 만들어진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내 부족함도 잘 보인다.
그래서 앞으로의 한 달 목표를 조금 다르게 잡아보기로 했다. "잘해야 한다"가 아니라 "잘 감당해야 한다." 잘하는 것과 잘 감당하는 것은 조금 다르다. 잘하려면 충분한 실력이 필요하지만,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지금 가진 실력 안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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