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될 때일수록 나를 낮춰야 하는 이유
오늘 이사야 말씀을 읽다가 히스기야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히스기야는 죽을병에 걸렸다가 극적으로 회복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바벨론 왕이 사신과 선물을 보내왔고, 히스기야는 그들을 기쁘게 맞이했다. 그리고 왕궁의 은과 금, 향품과 보물, 무기고까지 자신이 가진 것을 보여주었다. 성경에는 그가 보여주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훗날 이사야는 그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옮겨질 것이라고 예언한다.
처음에는 히스기야의 행동이 조금 어리석게 느껴졌다. 왜 굳이 저 많은 것을 다 보여주었을까 싶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나 역시 일이 잘 풀리거나 좋은 결과를 얻었을 때 마음이 들떴던 적이 있다. 누군가 나를 인정해주면 기분이 좋아서 평소보다 말이 많아졌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까지 한 적도 있다. 내가 잘하고 있는 일이나 가진 것을 은근히 드러내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부끄럽다. 그래서 이 글은 누군가에게 "자랑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기 위해 쓰는 글이라기보다, 나부터 그러지 않기 위해 적어두는 글에 가깝다.
사람은 힘들 때만 자신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이 잘될 때,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때, 기분 좋은 일이 연달아 생길 때 더 조심해야 한다. 힘들 때는 자연스럽게 몸을 낮춘다. 상황을 살피고 말을 조심한다. 내가 모든 것을 잘할 수 없다는 사실도 쉽게 인정한다. 그런데 일이 잘 풀리기 시작하면 조금씩 달라진다. 자신감이 생기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것까지는 좋지만, 어느 순간 그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마음이 들뜨면 평소보다 말이 많아진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계획을 미리 이야기하고,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될 것까지 말한다. 내가 이룬 성과와 가진 것, 누구에게 인정받았는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커진다. 평소 같으면 한 번쯤 생각하고 말했을 것도 그 순간에는 쉽게 입 밖으로 나온다.
그 순간에는 잘 모른다.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마음이 가라앉으면 뒤늦게 생각한다.
"내가 왜 그것까지 말했지?"
나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당시에는 그저 좋은 일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그 안에는 나를 조금 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도 섞여 있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내가 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었다.
그래서 요즘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 다른 사람보다 내 마음부터 살펴보려고 한다.
"나는 왜 지금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정말 기쁨을 나누고 싶은 것인지, 내가 잘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 생각해본다. 둘은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마음의 방향은 꽤 다르다.
자랑은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에게 전혀 다른 경험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별생각 없이 좋은 일을 이야기했지만, 듣는 사람은 자신의 상황과 비교하게 될 수 있다. 내가 가진 것과 이룬 것을 계속 보여주다 보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도 있고,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될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의 감정까지 모두 바카라임지며 살아갈 필요는 없다. 누군가 질투할까 봐 좋은 일을 숨기고, 기쁜 일이 생겨도 말하지 말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나를 축하해줄 사람과 기쁨을 나누는 것은 좋은 일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말하고 있느냐인지도 모른다.
살아갈수록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이 솔직함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가진 것, 내가 아는 사람, 앞으로 하려는 일, 잘되고 있는 일까지 모든 사람에게 알릴 필요는 없다. 말하지 않는다고 숨기는 것도 아니고, 보여주지 않는다고 가진 것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보여주지 않는 것이 지혜이고, 말하지 않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다.
특히 일이 잘될 때는 더 그렇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계획은 조금 더 익을 때까지 품고 있어도 된다. 좋은 성과를 냈다면 충분히 기뻐하되 그 이야기를 반복해서 꺼내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 나를 높이 평가해줄수록 내가 혼자 잘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잘될 때 나를 낮춘다는 것은 스스로를 작게 여기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이룬 것을 부정하거나 자신감을 갖지 말라는 뜻도 아니다. 내가 잘한 것은 잘했다고 인정하되 그것으로 나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만들지 않는 것. 좋은 결과에 기뻐하되 그 결과가 나라는 사람 전체의 가치인 것처럼 착각하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의 인정에 감사하되 그 인정에 취하지 않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겸손은 그런 모습에 조금 더 가깝다.
어쩌면 사람은 실패했을 때보다 성공했을 때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더 어려운지도 모른다. 실패하면 현실이 나의 한계를 알려주지만, 일이 잘될 때는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의식적으로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들뜬 마음을 경계하는 데에도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좋은 일이 생기면 충분히 기뻐하되 마음까지 함께 붕 뜨지 않도록 한 번 가라앉혀보는 것.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면 바로 말하기보다 잠시 품어보는 것. 누군가 나를 인정해주면 기분 좋게 받아들이되 그것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며 확인받으려 하지 않는 것.
그리고 가끔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꼭 해야 할까?"
"이 사람에게까지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지금 기쁨을 나누고 싶은 걸까, 나를 보여주고 싶은 걸까?"
이 글을 쓰면서도 조금 부끄럽다. 나 역시 이런 태도를 늘 잘 지켜온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나고 나서야 "그때 내가 꽤 들떠 있었구나", "굳이 그런 이야기까지 하지 않아도 됐는데" 하고 깨달았던 순간들이 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좋은 일이 생기면 신나고, 인정받으면 기분이 좋을 것이다. 나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겸손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기보다, 들뜬 마음을 경계하는 연습을 계속하고 싶다. 잘될수록 조금 더 차분하게, 인정받을수록 말을 조금 더 아끼고,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굳이 모두 보여주지 않으면서. 들뜨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들뜬 나를 알아차리고 다시 마음을 낮출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