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을 깎아내리는 것이 겸손은 아니다
얼마 전 한 아이를 아버지 앞에서 칭찬한 적이 있다. 내가 보기에 그 아이에게 참 괜찮은 모습이 있어서 진심으로 칭찬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에이, 잘못 보셨겠죠~."
그러고는 아이를 향해 장난스럽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어쩌다 그랬어?"
분위기는 웃으며 넘어갔다. 아버지도 아이를 깎아내리려는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 칭찬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쑥스러웠을 수도 있고, "우리 아이가 원래 잘해요"라고 말하면 자식 자랑을 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겸손하게 반응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조금 아쉬웠다. 굳이 아이 앞에서 아이에 대한 칭찬을 깎아내릴 필요가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는 가까운 사람이 칭찬받을 때 의외로 이런 반응을 자주 한다.
"남편분 정말 자상하시네요."
"밖에서만 그래요. 집에서는 손 하나 까딱 안 해요."
"아이가 참 의젓하네요."
"집에서는 얼마나 말을 안 듣는데요."
"아내분이 정말 능력이 있으시네요."
"뭘 모르셔서 그래요. 허당이에요."
우리는 이런 말을 꽤 자연스럽게 한다. 심지어 그것을 겸손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칭찬을 그대로 받으면 팔불출처럼 보일 것 같고, "맞아요. 우리 남편 정말 괜찮은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면 괜히 자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웃음을 섞어 상대의 단점을 하나 꺼내 놓으며 균형을 맞춘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내가 칭찬받았을 때 나 자신을 낮추는 것과, 다른 사람이 칭찬받았을 때 그 사람을 낮추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누군가 내게 "정말 일을 잘하시네요"라고 했을 때 "아니에요. 아직 많이 부족해요"라고 대답하는 것은 내가 선택한 겸손이다. 하지만 누군가 내 아이에게 "참 바카라임감이 있네요"라고 했는데 내가 "에이, 집에서는 전혀 안 그래요"라고 말하는 것은 내가 겸손한 것이 아니다. 아이를 대신해서 아이를 낮춘 것이다. 배우자도 마찬가지다. 남편에게 들어온 칭찬을 아내가 부정한다고 해서 아내가 겸손해지는 것도 아니고, 아내에게 들어온 칭찬을 남편이 농담으로 깎아내린다고 해서 남편이 겸손해지는 것도 아니다. 가족을 낮춘다고 내가 겸손해지는 것은 아니다.
더 생각해 볼 것은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는 가족의 마음이다. 아이는 누군가에게 칭찬받는 순간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있던 아빠가 "잘못 보셨겠죠"라고 말한다. 물론 한두 번의 농담 때문에 아이가 크게 상처받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소통이 반복된다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한 가지를 배우게 된다.
'아빠는 내가 잘했다는 말을 잘 인정하지 않는구나.'
배우자도 비슷하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가장 가까운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 단점을 하나 보탠다. 사람들은 웃고 지나가지만 당사자에게는 묘한 서운함이 남을 수 있다.
'굳이 지금 저 말을 해야 했을까.'
문제는 핀잔을 주는 사람에게 나쁜 의도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오히려 가까운 사이이기에 표현을 조심하지 않거나, 칭찬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쑥스러워 농담으로 넘기기도 한다.
하지만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의도만큼 표현 방식도 중요하다. 내가 애정 표현이 쑥스러운 것과 상대를 깎아내리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내가 자식 자랑하는 부모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것과 아이에게 들어온 칭찬을 부정하는 것도 다른 문제다. 내가 겸손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옆 사람의 좋은 순간까지 작게 만들 필요는 없다. 누군가 내 가족을 칭찬해 준다면 그냥 기쁘게 받아주면 된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맞아요. 저도 그 점은 참 기특하게 생각해요."
"저도 남편의 그런 점을 참 좋아해요."
이런 말을 한다고 교만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까운 사람의 좋은 점을 기꺼이 인정해 줄 수 있다는 것은 관계의 성숙함에 가깝다.
우리는 이상하게도 남에게는 쉽게 해주는 좋은 말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아낄 때가 있다. 밖에서는 다른 사람의 장점을 잘 발견하고 칭찬하면서 정작 배우자와 자녀에게는 "너무 띄워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부족한 점부터 이야기하기도 한다.
물론 가족이라고 해서 부족한 점을 말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할 때는 누구보다 솔직하게 이야기해 줄 수도 있다. 다만 누군가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발견해 칭찬하는 순간까지 굳이 단점을 꺼내 균형을 맞출 필요는 없다.
칭찬은 평가표가 아니다.
장점 하나를 인정한다고 해서 단점까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아이에게 저런 좋은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아이의 부족한 모습까지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 순간만큼은 상대가 받은 좋은 말을 그대로 받아주면 된다.
누군가 내 가족의 좋은 점을 발견해 주었다면 함께 기뻐해 주자.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모습이라면 오히려 한 번 더 바라봐 주자.
"그런 모습도 있었구나."
그리고 가능하다면 다른 사람이 떠난 뒤에도 한 번 더 말해주면 좋겠다.
"아까 그분이 너 칭찬하시더라. 엄마도 기분 좋았어."
가까운 사람일수록 좋은 말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좋은 순간을 작게 만들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도 가족에게 줄 수 있는 중요한 사랑의 방식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