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갈증 #4

by지레인

*
'토할 것 같아.'
몇 발자국 걷다 멈춰 섰다. 가슴이 꽉 막혀 숨을 쉬기 힘들다. 손가락을 집어넣어 헛구역질을 해도, 빼낼 수 없을 것 같은 찜찜함이 속 깊이 얹혔다.. 눈물은 위선이다.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여? 분노를 건드린 그녀가 미치도록 밉다. 속이 아리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을 망친 그녀가 세상에 없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독을 품은 악마다...

그러나... 나였다.

그때 악마는, 내게 있었다.


*

독서실에 도착했지만 들어갈 수 없었다. 주변을 서성이다 숲길을 발견했다. 뒷산으로 연결된 것 같은 데 가본 적 없는 길이었다. 이끌리듯 걸어 들어간다. 2년 전 동아리방 문을 열었을 때처럼. 그저 그냥... 나도 모르게... 안으로, 안으로... 얼마를 걸었을까?

“징~~~.”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김지홍 씨 아시죠?”

다급한 목소리가 대뜸 질문을 던진다.

“예? 예…”

사고가 났습니다.

“네?”

"머리를 다치셨는데... 응급실로 가고 있어요. 보호자 되시나요?"

"아니 저, 저는 보호자는 아니고... 그러니까, 김지홍 씨 핸드폰으로 부모님 연락처를 찾아봐야 할 것 같은대요."

"네 알겠습니다."


뚜 뚜 뚜 뚜


서둘러 끊긴 핸드폰을 그대로 들고 있다. 머릿속에는 마지막 말 '네 알겠습니다'만 메아리쳤다. 얼마나 다쳤는지 묻지 못했다. 응급실로 간다니 심각한 거겠지?
최악이다
하필 그녀를 만나,
나와 헤어지고
돌아가는 길에 닥친 너의 사고.
악마가 내 저주를 듣고 너에게 해를 끼친 걸까?
감당하기 힘든 죄바카라감이 삼킬 듯 짓누른다.


숲으로 걸어 들어간다. 너에게서 멀어진다.

숲으로. 숲으로.
그래. 이게 나야. 이런 인간이야.
그녀가 죽어가는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이토록 무력한 나는... 그저 숲으로 들어간다. 새소리가 아름답다. 소름 돋도록 자기중심적인 인간이다. 돌아나갈 자신이 없다. 이렇게나 비겁하다. 이렇게나 이기적이다.
발걸음은 그대로 숲으로, 숲으로.


*
아무래도 길을 잃은 것 같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오솔길이라 생각했던 길은 어느새 흔적 없이 사라졌고, 발밑엔 낙엽과 마른 가지뿐이다. 휴대폰이 울렸다. 주머니에 더 깊이 쑤셔 넣는다.
그러다 여인을 보았다.
마흔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그녀는 커다란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내 그녀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천천히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딘지 익숙한 얼굴이다.
"길을 잃었나요?"
초점 없는 눈동자가 물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앉아요."
명령도 아니고 부탁도 아닌 말투였다. 몇 초간 망설이다 여인 옆에 가만히 앉았다. 그녀는 앞을 볼 수 없는 듯했다. 그게 나를 안심시켰다.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다시 또 바람이 지나가고,

새소리가 들렸다.

"좋아하는 사람을 잃었군요."

"... 죽을지도 몰라요."

이상하고도 낯선 여인에게 떠오르는 말을 뱉는다.

"그저 그럴 뿐이에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하시네요. 그녀가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여인의 얼굴에 슬픈 표정이 드리워졌다.

"사람은 누구나 죽어요. 빠르고 늦고의 차이죠. 빠르고 늦음도 헤아릴 수 없는 우리의 언어일 뿐..."

"그녀에게 상처를 줬어요."

"당신은 두려웠을 뿐이에요."


*

무심히 말한다.

두려움.

마치 그 단어 하나면 충분하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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