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우리는 같은 디자인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01 1부. 디자인은 왜 죽고 있는가

by이규현

1부

디자인은 왜 죽고 있는가


죽음의 원인을 알려면 부검이 필요하다. 그리고 부검은 길다.


1부는 이 바카라에서 가장 긴 부다.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처음 태어난 19세기의 공방에서 출발해, 공장과 백화점과 화면과 회의실을 거쳐, 마침내 모든 것을 자처하게 된 오늘까지 150년을 따라간다. 이렇게 길게 가는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의 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도착한 것이 아니라, 이 150년 동안 한 층씩 쌓인 것이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확장할 때마다 새로운 힘을 얻었고, 그때마다 무언가를 뒤에 두고 왔다.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두고 왔는지를 모르면, 지금 무엇이 무너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먼저 한 가지를 분명히 해두자. 죽고 있는 것은 디자인 그 자체가 아니다. 죽고 있는 것은 어떤 시대의 디자인 — 정의 없이 무한히 팽창하며 모든 것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디자인이다. 1부가 끝날 때, 당신은 그 팽창의 전체 경로를 갖게 될 것이다. 그것이 2부에서 진범을 가려내기 위한 증거들이다.




1장

우리는 같은 디자인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같은 단어, 다른 세계

회의실 안에 세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제품 디자이너다. 그는 손잡이의 곡률을 0.5밀리미터 단위로 조정하며 하루를 보낸다. 사용자의 손이 물건을 쥐는 각도, 손바닥의 압력이 분산되는 방식, 소재가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촉감. 그의 바카라상에는 3D 프린팅된 목업이 여섯 개 놓여 있다. 여섯 개는 언뜻 보면 모두 똑같다. 그러나 그의 손은 그 차이를 안다. 그에게 디자인은 물리적 세계와 인간 신체 사이의 정밀한 조율이다. 그는 소재의 이름을 수십 개 알고 있고, 사출 금형의 한계를 알고 있고, 양산 단가가 형태를 어떻게 제약하는지 알고 있다.

옆에 앉은 사람은 서비스 디자이너다. 그녀는 고객이 브랜드를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이탈하는 순간까지의 전체 여정을 그린다. 터치포인트, 감정 곡선, 시스템 간의 연결. 그녀의 모니터에는 가로로 긴 여정 지도가 펼쳐져 있다. 수십 개의 포스트잇이 시간 순으로 배열되어 있고, 그 아래에는 고객이 각 지점에서 느끼는 감정이 곡선으로 그려져 있다. 그녀에게 디자인은 경험의 흐름을 설계하는 일이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녀가 만드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시간이다.

세 번째 사람은 조직 디자이너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다. 그는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를 재편하고, 팀 간의 커뮤니케이션 경로를 설계하고, 조직 문화의 전환을 이끈다. 그의 화이트보드에는 조직도가 그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인사팀이 그리는 조직도와 다르다. 보고 라인이 아니라 정보가 실제로 흐르는 경로, 공식 직함이 아니라 실제 영향력의 분포가 그려져 있다. 그에게 디자인은 인간 집단의 행동 패턴을 바꾸는 일이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자신이 디자인을 한다고 말한다. 명함에 디자이너라고 적혀 있고, 디자인 컨퍼런스에서 만나면 동종 업계 사람으로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세 사람 모두 틀리지 않았다.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전문성으로 진지하게 일하고 있다.

문제는, 이 세 사람이 서로의 일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제품 디자이너는 서비스 디자이너의 여정 지도를 보면서 생각한다. 저건 컨설팅 아닌가. 서비스 디자이너는 조직 디자이너의 화이트보드를 보면서 생각한다. 저건 HR 아닌가. 조직 디자이너는 제품 디자이너의 목업을 보면서 생각한다. 저렇게 디테일에 매몰되면 큰 그림을 놓치지 않나. 서로에 대한 존중이 없어서가 아니다. 서로의 세계가 너무 멀어서다. 같은 단어 아래 살고 있지만, 사실상 다른 직업이다.


단어가 늘어날 때 생기는 일

언어학에는 의미 확장(semantic broadening)이라는 개념이 있다. 한 단어가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보다 넓은 의미를 포괄하게 되는 현상이다. 이런 확장은 자연스럽고, 대부분의 경우 언어가 세계를 더 효율적으로 담아내는 방식이다.

그런데 의미가 너무 넓어지면 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단어는 커뮤니케이션의 도구이기를 멈추고, 오해의 온상이 된다. 두 사람이 같은 단어를 쓰면서 서로 다른 것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면, 그 대화는 합의에 도달한 것처럼 보이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합의하지 못한다. 이것이 가장 위험한 종류의 오해다. 오해라는 사실 자체가 드러나지 않는 오해.

디자인이 지금 그 지점에 와 있다.

2000년대만 해도 디자인은 비교적 명확한 경계를 가지고 있었다. 제품을 만들고, 그래픽을 만들고, 공간을 구성하는 일. 물론 그 안에도 세부 분과는 있었지만, "나는 디자이너입니다"라는 말은 상대방에게 대략적인 그림을 전달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 시각적인 결과물을 내놓는 사람. 그 그림이 정확하지 않더라도,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 만큼은 공유되어 있었다.

그 이후 3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

인터랙션 디자인, UX 디자인, UI 디자인, 서비스 디자인, 경험 디자인, 전략 디자인, 트랜스포메이션 디자인, 소셜 디자인, 스페큘러티브 디자인, 디자인 씽킹, 비즈니스 디자인, 조직 디자인, 시스템 디자인, 정바카라 디자인. 이 목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새로운 수식어가 디자인 앞에 붙고 있을 것이다.

각각의 분야는 나름의 방법론을 가지고 있고, 나름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으며, 나름의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각각의 분야에서 진지한 사람들이 진지한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의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 존재한다고 모두가 믿고 있지만, 그 내용에 대해 합의한 적이 없다. 모두가 디자인이라는 단어 아래 모여 있지만, 각자가 그 단어로 다른 것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은 학술적인 트집이 아니다. 정의의 부재는 현실의 문제를 만든다. 채용 공고에 "디자이너 모집"이라고 쓰면, 회사가 기대하는 사람과 지원하는 사람이 어긋난다. 클라이언트가 "디자인을 의뢰"하면, 클라이언트가 기대하는 것과 디자이너가 제공하는 것이 어긋난다. 대학이 "디자인을 교육"하면, 학교가 가르치는 것과 시장이 원하는 것이 어긋난다. 이 어긋남들이 쌓여서, 디자인이라는 직업 전체의 신뢰 구조를 갉아먹는다.


디자인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나는 매 학기 첫 수업을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디자인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20명 남짓한 학생들이 잠깐 머뭇거린다. 첫 수업의 어색함 속에서, 누가 먼저 입을 열지 서로 눈치를 본다. 그리고 손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요."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이요."

"사람을 위한 것이요."

"기능과 형태를 연결하는 것이요."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요."

"의미를 시각화하는 것이요."

"사용자의 경험을 설계하는 것이요."

어떤 학기엔 이런 대답도 나왔다.

"모르겠어요. 근데 보면 알 것 같아요."

그 대답에 교실에 웃음이 터졌다. 그런데 나는 그 대답이 가장 정직한 대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1964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포터 스튜어트 대법관은 음란물의 정의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정의할 수는 없지만, 보면 압니다(I know it when I see it)." 법의 언어로는 무바카라임한 답변이었지만, 인간의 인식이 작동하는 방식으로는 솔직한 답변이었다. 디자인도 지금 그 상태에 있다. 정의할 수는 없지만, 보면 안다고 모두가 믿는 상태.

나는 학생들의 대답을 칠판에 전부 적는다. 문제 해결. 아름다움. 사람. 기능과 형태. 더 나은 세상. 의미. 경험. 칠판이 채워지면, 한 걸음 물러서서 학생들과 함께 그것을 바라본다. 그리고 말한다.

"전부 맞습니다."

학생들은 잠깐 의아해한다. 전부 다른 말을 했는데, 어떻게 전부 정답일 수 있냐고. 누군가는 안도하고, 누군가는 찜찜해한다. 나는 그 찜찜한 표정을 기다린다. 왜냐하면 그 의아함이 바로 이 수업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전부 맞다. 그리고 그게 문제다.

하나의 단어가 이토록 다양한 답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답들이 모두 틀리지 않다는 것. 이것은 디자인이 풍요로운 개념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한 번도 제대로 합의한 적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험 문제에 모든 보기가 정답이라면, 그것은 좋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가 무엇을 묻는지 자체가 불분명하다는 뜻이다.

나는 20년 가까이 디자인을 해왔다. 그리고 지금도 이 질문에 완전히 답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이 질문을 미루는 것이,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혼란의 근원이라는 것.


정의 없이 성장한 것들의 공통된 결말

나는 종종 디자인의 확장을 스타트업 성장 신화에 비유한다.

2010년대의 많은 스타트업들은 수익 모델을 확정하기 전에 사용자를 늘리는 데 집중했다. 일단 커지면 돈 버는 방법은 나중에 찾으면 된다는 논리였다. 성장 지표는 화려했다. 월간 활성 사용자, 다운로드 수, 체류 시간. 투자는 몰렸다. 기업 가치는 치솟았다. 그러나 결국 "이 회사는 어떻게 돈을 버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많은 기업들이 무너졌다. 성장은 있었지만, 근거는 없었다. 시장이 좋을 때는 아무도 그 질문을 하지 않았다. 시장이 식자, 그 질문만 남았다.

디자인도 비슷한 경로를 걸어왔다.

영향력은 커졌다. 디자이너는 이제 CEO 옆자리에 앉는다. 디자인 부서는 기업의 전략 결정에 참여한다. 디자인 씽킹은 대학원 교육 과정이 되었고, 정부 정바카라의 도구가 되었다. 디자인 어워드는 늘어났고, 디자인 미디어는 풍성해졌고,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붙은 직함은 셀 수 없이 많아졌다. 겉으로 보이는 숫자와 위상은 분명히 올라갔다.

그런데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답해지지 않았다. 성장하는 동안에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영역이 넓어지고 자리가 늘어나는데 굳이 경계를 그어서 자기 발을 묶을 이유가 없었다. 모호함은 모두에게 이익이었다.

그리고 AI가 등장했다. 시장이 식은 것이다. 이제 그 질문만 남았다.


AI가 폭로한 것

AI가 디자이너의 일을 빼앗을 것인가, 하는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다.

더 정확한 질문은 이것이다. AI는 디자인의 어느 부분을 대체하는가.

그리고 이 질문에 답하려는 순간, 우리는 "디자인이 무엇인가"라는 정의 문제로 되돌아온다. 정의가 없으면, 무엇이 대체되고 무엇이 남는지도 말할 수 없다. 전체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부분을 가려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비주얼을 생성하는 것이 디자인이라면, AI는 이미 디자인을 한다. 미드저니는 무드보드를 만들고, 달리는 일러스트를 그리고, 생성형 툴들은 로고 시안을 수십 개씩 뽑아낸다. 사용자 흐름을 최적화하는 것이 디자인이라면, AI는 데이터 기반으로 인간보다 빠르게 한다. 수백만 건의 행동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아 전환율을 높이는 일에서 인간은 이미 기계를 이기지 못한다. 브랜드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디자인이라면, AI는 피로 없이 수천 개의 에셋을 동일한 기준으로 처리한다.

그러나 디자인이 의미를 만드는 것이라면, 관계를 설계하는 것이라면, 문화를 번역하는 것이라면 — AI는 아직 거기까지 오지 않았다. 아마도 오지 못할 수도 있다. 의미는 데이터의 패턴이 아니라 삶의 맥락에서 나오고, 관계는 계산이 아니라 신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 두 가지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디자인이라고 불러왔다는 것이다. 패턴의 재현과 의미의 창조를 같은 단어로 불렀다. 그래서 AI가 전자를 잠식하기 시작했을 때, 마치 디자인 전체가 잠식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공포의 실체는 AI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분류 실패였다.

AI는 디자인을 위협한 것이 아니다. AI는 디자인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너는 무엇이냐고. 150년 동안 미뤄온 그 질문을, 이제는 답해야 한다고.


이 장이 던지는 질문

우리는 같은 디자인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나는 이 질문에 지금 당장 답하지 않을 것이다. 이 바카라 전체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다. 답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지금의 상태에 이르렀는지를 따라가야 한다. 그것이 다음 장부터 시작되는 역사 여행의 목적이다.

다만 이 장을 닫으면서 한 가지만 말해두고 싶다.

혼란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혼란은 출발점이다.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지도를 펼친다. 디자인은 지금 길을 잃었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우리가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 각자가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쓸 때 실제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회의실의 세 디자이너가 서로의 화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강의실의 학생들이 칠판에 적힌 일곱 개의 답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그 작업 없이는, 어떤 미래도 설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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