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종말 이후의 디자인

00 프롤로그

by이규현

프롤로그



나는 디자이너다.

정확히는, 디자이너였다. 아니, 지금도 디자이너다. 다만 나는 더 이상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얼마 전 한 컨퍼런스에서 패널로 앉은 적이 있다. 주제는 "AI 시대의 디자이너"였다. 예상할 수 있는 자리였다. 무대에는 나를 포함해 네 명이 앉았다. 대형 IT 기업의 디자인 총괄, 디자인 전문 에이전시의 대표, AI 스타트업의 프로덕트 리드, 그리고 나. 슬롯자가 첫 질문을 던졌다. "AI가 디자이너를 대체할까요?"

누군가는 AI가 디자이너를 대체할 것이라 했고, 누군가는 도구일 뿐이라 했다. 디자인 총괄은 신중하게 말했다. "반복적인 작업은 대체되겠지만 창의적인 영역은 남을 겁니다." 에이전시 대표는 단호했다. "이미 주니어 디자이너 채용을 줄였습니다. 현실입니다." 스타트업 리드는 낙관적이었다. "디자이너가 AI를 쓰면 열 배의 생산성이 나옵니다. 기회입니다."

논쟁은 두 시간 동안 제자리를 맴돌았다. 청중석에서 손이 올라왔다. 대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청년이 물었다. "그러면 저는 지금 디자인을 계속 공부해야 하나요?" 무대 위의 누구도 그 질문에 똑바로 답하지 못했다. 위로 같은 말들이 오갔다. 본질에 집중하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라. 그런데 그 본질이 무엇이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체될 것인가, 살아남을 것인가. 그 질문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언가가 대체되는지를 물으려면, 먼저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디자이너가 대체되는지를 물으려면, 먼저 디자이너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 합의가 없었다. 무대 위의 네 사람은 각자 다른 디자인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디자인 총괄에게 디자인은 제품 경험이었고, 에이전시 대표에게 디자인은 납품 가능한 결과물이었고, 스타트업 리드에게 디자인은 프로덕트 개발 프로세스의 한 단계였다. 같은 단어, 다른 세계.

우리는 AI 이전에 이미 길을 잃고 있었다. AI는 그 사실을 가속했을 뿐이다.


너무 커져버린 단어

디자인이라는 단어는 지금 너무 많은 것을 의미한다.

제품을 만드는 것도 디자인이고, 서비스를 설계하는 것도 디자인이고, 조직 문화를 바꾸는 것도 디자인이고, 도시를 재구성하는 것도 디자인이다. 심지어 인생을 설계하는 것도 디자인이라고 말한다. 스탠퍼드에는 "인생 디자인(Designing Your Life)" 강의가 있고, 그 강의는 바카라이 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누군가는 정바카라이 디자인이라 하고, 누군가는 감정이 디자인이라 하고, 누군가는 유전자 편집조차 디자인의 언어로 설명한다.

단어의 확장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언어는 살아있는 것이고, 의미는 시대에 따라 넓어지기도 좁아지기도 한다. 문제는 확장의 속도와 폭이 합의의 속도를 압도해버렸다는 것이다.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새로운 영역을 흡수할 때마다, 그 영역에서 디자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생략되었다. 흡수가 먼저였고, 정의는 영원히 뒤로 미뤄졌다.

한 단어가 모든 것을 설명할 때, 그 단어는 사실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나는 오랫동안 이것을 디자인의 성공이라고 믿었다. 확장. 영향력. 영역의 확대. 디자이너가 회의실의 끝자리에서 가운데 자리로 옮겨가는 것.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경영서의 제목에 등장하는 것. 정부 문서에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싸워서 얻어낸 진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 확장이 공허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치 너무 늘린 고무줄처럼, 형태를 잃어버린 무언가처럼. 디자인은 어디에나 있었지만, 어디에서도 명확하지 않았다.


내가 통과해온 자리들

이 공허함을 추상적인 이야기로 만들고 싶지 않다. 이것은 내 경력의 한가운데를 관통한 경험이다.

나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제품이 전부인 줄 알았다. 좋은 물건을 만들면 팔린다고 믿었다. 그런데 브랜드를 키우면서 알게 됐다. 제품은 시작일 뿐이었다. 패키지가 있었고, 매장이 있었고, 온라인 경험이 있었고, 고객 응대가 있었고, 가격 전략이 있었고, 유통 구조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브랜드라는 하나의 경험을 만들었다. 나는 제품 디자이너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서비스를 설계하고 있었고, 또 어느 순간 조직을 설계하고 있었고, 결국에는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설계하고 있었다.

그 모든 단계에서 나는 스스로를 디자이너라고 불렀다. 그런데 단계가 바뀔 때마다 그 단어가 의미하는 것이 달라졌다. 손으로 형태를 잡던 시절의 나와, 엑셀 시트 위에서 수익 구조를 그리던 시절의 나는 같은 직업인이었는가. 나는 모르겠다. 그리고 그 모름이, 브랜드를 매각하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더 무거워졌다.

강단에 서면 도망칠 곳이 없다. 학생들은 묻는다. 교수님, 디자인이 뭐예요. 졸업하면 저는 뭘 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AI가 다 한다는데 저는 뭘 배워야 해요. 이 질문들 앞에서 업계의 관용구들은 힘을 잃는다. 본질에 집중하라는 말은 답이 아니다. 그 본질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어야 답이다.

이 바카라은 그 질문들에 답하려는 시도다. 나 자신에게.


이 바카라이 아닌 것

먼저 이 바카라이 무엇이 아닌지를 말해두고 싶다.

이 바카라은 디자인을 옹호하기 위해 쓴 바카라이 아니다. 디자인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디자인이 세상을 구할 것이라고 선언하는 바카라은 이미 충분히 많다. 그런 생각들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바카라들이 지금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바카라은 디자인을 비판하기 위해 쓴 바카라도 아니다. 디자인 씽킹은 사기였다고, 디자인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하는 글들도 최근 몇 년 사이 쏟아졌다. 통쾌할 수는 있지만, 부수기만 하는 글은 다음 단계를 만들지 못한다.

이 바카라은 AI 활용서도 아니다. 미드저니 프롬프트를 잘 쓰는 법이나, AI 시대에 살아남는 포트폴리오 전략 같은 것은 여기 없다. 그런 정보는 이 바카라이 인쇄되기도 전에 낡아버릴 것이다.

나는 디자인을 다시 정의하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는 — 우리가 한 번도 제대로 정의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디자인의 위기는 AI 때문이 아니다. 디자인의 위기는 우리가 디자인이 무엇인지 합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공백 속에서 디자인은 필요한 모든 곳에 불려 다녔고, 필요한 모든 모양으로 변형되었고, 결국 스스로도 자신이 무엇인지 잊어버렸다. AI는 이 공백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 공백을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만들었다.


불편한 질문들

나는 이 바카라에서 불편한 질문들을 던질 것이다.

디자인 씽킹은 정말 디자인인가. 포스트잇과 워크숍으로 압축된 그 다섯 단계는, 디자인의 정수인가 아니면 디자인에서 디자이너를 제거한 추출물인가.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는 사람은 디자이너인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A/B 테스트를 돌리고, 전환율을 최적화하는 일은 디자인인가 아니면 다른 이름이 필요한 다른 직업인가.

전략을 짜는 컨설턴트와 전략 디자이너는 무엇이 다른가. 같은 회의실에서 같은 화이트보드에 같은 다이어그램을 그리는 두 사람의 차이를, 우리는 설명할 수 있는가.

그리고 — AI가 비주얼을 만들어내는 시대에, 손으로 형태를 빚어온 디자이너는 무엇으로 남는가.

이 질문들은 디자이너를 공격하는 질문이 아니다. 나 역시 이 질문들 앞에서 자유롭지 않다. 나는 이 업계 안에 있는 사람이고, 이 업계의 언어로 사고해온 사람이고, 이 업계의 모호함으로부터 혜택을 받아온 사람이다. 디자인이라는 단어의 넓이 덕분에 나는 제품에서 브랜드로, 브랜드에서 비즈니스로 영역을 옮길 수 있었다. 그 모호함이 나의 사다리였다.

그래서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부에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내부에 있기 때문에 직시하기 두려운 것들도 있다. 이 바카라은 그 두려움을 통과한 기록이다.


이 바카라의 구조

이 바카라은 크게 세 부분으로 움직인다.

앞부분은 역사다. 디자인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따라간다. 윌리엄 모리스의 공방에서, 포드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바우하우스의 강의실에서, 애플의 스튜디오에서, 스탠퍼드의 d.school에서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변형되고 확장되었는지를 본다. 역사를 길게 다루는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의 혼란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150년에 걸쳐 누적된 것이기 때문이다. 누적의 과정을 모르면 혼란의 구조도 보이지 않는다.

가운데 부분은 진단이다. 확장의 끝에서 디자인이 어떤 상태에 도달했는지를 들여다본다. 성공이 만든 역설, 모든 것이 디자인이 된 시대의 공허함, 그리고 AI가 드러낸 것들. 여기서 이 바카라의 핵심 주장이 나온다. 위기의 원인은 기술이 아니라 정의의 부재라는 것.

뒷부분은 제안이다. 디자인을 어떻게 다시 정의할 수 있는지,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남는지, 교육은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다룬다. 완성된 답을 주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겠다. 다만 방향은 제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시작하기 전에

디자인의 종말 이후에도 디자인은 있다.

이 바카라의 제목은 비관이 아니다. 지금 끝나가고 있는 것은 디자인 그 자체가 아니라, 정의 없이 무한히 팽창해온 어떤 시대의 디자인이다. 그 시대가 끝나는 자리에서, 디자인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지금의 디자인과 같은 모양이 아닐 것이다.

나는 그 새로운 모양을 찾고 싶다. 혼자가 아니라, 이 바카라을 읽는 당신과 함께.

당신이 디자이너라면, 이 바카라이 당신의 불안에 이름을 붙여주기를 바란다. 이름 붙일 수 있는 불안은 다룰 수 있는 불안이다.

당신이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이 바카라이 당신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지도가 되기를 바란다. 완성된 지도는 아니어도, 나침반은 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면 — 경영자든, 개발자든, 마케터든 — 이 바카라이 당신 옆자리의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어쩌면 그 사람 자신보다 당신이 먼저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신이 그저 디자인된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 우리 모두가 그렇다 — 이 바카라이 당신을 둘러싼 사물과 화면과 공간이 누군가의 결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결정에 당신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를 바란다.


이제 시작하자.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같은 디자인을 이야기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