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 5초의 반란

“당신 차례입니다.”

by교주

정준치의 눈치 번역기는 예상보다 잘 팔렸다. 시작은 ‘부모 눈치 번역기’였다. 의대를 그만두겠다고 말한 날, 엄마의 “밥 먹어”가 정말 밥만 먹으라는 뜻인지 궁금해서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나중에는 부모뿐 아니라 사람 사이의 눈치까지 번역하게 됐고, 이름도 ‘눈치 번역기’로 줄었다. 말이나 메시지를 넣으면 담겼을 법한 뜻 몇 개와 가능성이 퍼센트로 떴다.


화면 맨 아래에는 준치가 오래 고민해 넣은 문구가 있었다.


‘최종 선택은 사용자입니다.’


“엄마가 화난 줄 알았는데 걱정하는 거였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내가 피곤한 줄 모르고 싸울 뻔했다”는 후기가 쌓였다. 준치는 별 다섯 개짜리 리뷰를 읽으며 뿌듯해했다. 틈만 나면 결과를 다시 확인하고 오류를 고쳤다. 코딩은 여전히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문의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번역기를 켜지 않으면 먼저 말을 붙이기가 더 힘들어졌다는 사람이 있었고, 연인과 다투다가 서버가 느려지자 번역 결과가 나올 때까지 휴전하기로 했다는 사용자도 있었다. 처음에는 웃었다. 자기 프로그램 덕분에 싸움까지 멈췄으니 나쁠 것도 없었다. 비슷한 이야기가 계속 들어오자 웃음기가 옅어졌다.


준치가 정말 이상하다고 느낀 건, 베타테스트 때부터 번역기를 쓰던 한 모녀가 작업실에 찾아왔을 때였다. 처음에는 서로 오해하는 일이 많이 줄었다며 좋아했던 모녀였다.


준치는 요즘 가장 자주 부딪히는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엄마가 먼저 늦은 귀가 이야기를 꺼냈다.


“도대체 몇 시에 들어오려고 했던 거야?”


딸은 대답하는 대신 휴대폰을 들었다. 잠시 뒤 화면에 세 개의 해석이 나타났다.

걱정해서 귀가 시간을 묻는 말 51%

늦게 다니지 말라는 경고 31%

단순히 시간을 묻는 말 18%


“봐. 결국 늦게 다니지 말라는 거잖아.” 딸의 손가락이 두 번째 줄을 가리켰다.

“얘, 그 위 줄을 봐. 걱정이 51퍼센트잖아.” 엄마는 첫 번째 줄을 가리켰다.


이번에는 엄마가 딸의 말을 번역기에 넣었다. 딸은 친구들과 있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했다. 화면이 다시 바뀌었다.

늦은 이유를 설명하는 말 42%

야단맞기 싫어서 하는 변명 38%

이제 그만 묻고 싶다는 뜻 20%


엄마의 손가락은 망설임 없이 두 번째 줄로 갔다. “봐. 변명이라잖아.”

딸의 얼굴이 굳었다. “난 진짜 그 뜻이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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