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차례입니다.”
정준치의 눈치 번역기는 예상보다 잘 팔렸다. 시작은 ‘부모 눈치 번역기’였다. 의대를 그만두겠다고 말한 날, 엄마의 “밥 먹어”가 정말 밥만 먹으라는 뜻인지 궁금해서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나중에는 부모뿐 아니라 사람 사이의 눈치까지 번역하게 됐고, 이름도 ‘눈치 번역기’로 줄었다. 말이나 메시지를 넣으면 담겼을 법한 뜻 몇 개와 가능성이 퍼센트로 떴다.
화면 맨 아래에는 준치가 오래 고민해 넣은 문구가 있었다.
‘최종 선택은 사용자입니다.’
“엄마가 화난 줄 알았는데 걱정하는 거였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내가 피곤한 줄 모르고 싸울 뻔했다”는 후기가 쌓였다. 준치는 별 다섯 개짜리 리뷰를 읽으며 뿌듯해했다. 틈만 나면 결과를 다시 확인하고 오류를 고쳤다. 코딩은 여전히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문의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번역기를 켜지 않으면 먼저 말을 붙이기가 더 힘들어졌다는 사람이 있었고, 연인과 다투다가 서버가 느려지자 번역 결과가 나올 때까지 휴전하기로 했다는 사용자도 있었다. 처음에는 웃었다. 자기 프로그램 덕분에 싸움까지 멈췄으니 나쁠 것도 없었다. 비슷한 이야기가 계속 들어오자 웃음기가 옅어졌다.
준치가 정말 이상하다고 느낀 건, 베타테스트 때부터 번역기를 쓰던 한 모녀가 작업실에 찾아왔을 때였다. 처음에는 서로 오해하는 일이 많이 줄었다며 좋아했던 모녀였다.
준치는 요즘 가장 자주 부딪히는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엄마가 먼저 늦은 귀가 이야기를 꺼냈다.
“도대체 몇 시에 들어오려고 했던 거야?”
딸은 대답하는 대신 휴대폰을 들었다. 잠시 뒤 화면에 세 개의 해석이 나타났다.
걱정해서 귀가 시간을 묻는 말 51%
늦게 다니지 말라는 경고 31%
단순히 시간을 묻는 말 18%
“봐. 결국 늦게 다니지 말라는 거잖아.” 딸의 손가락이 두 번째 줄을 가리켰다.
“얘, 그 위 줄을 봐. 걱정이 51퍼센트잖아.” 엄마는 첫 번째 줄을 가리켰다.
이번에는 엄마가 딸의 말을 번역기에 넣었다. 딸은 친구들과 있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했다. 화면이 다시 바뀌었다.
늦은 이유를 설명하는 말 42%
야단맞기 싫어서 하는 변명 38%
이제 그만 묻고 싶다는 뜻 20%
엄마의 손가락은 망설임 없이 두 번째 줄로 갔다. “봐. 변명이라잖아.”
딸의 얼굴이 굳었다. “난 진짜 그 뜻이 아니었어.”
“38퍼센트나 되는데?”
두 사람은 왜 늦었는지 이야기하는 대신 어느 숫자가 더 중요한지를 놓고 따지기 시작했다. 화면 맨 아래에는 여전히 ‘최종 선택은 사용자입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준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번역기는 세 개의 가능성을 보여줬는데, 두 사람은 각자 하나씩만 읽고 있었다.
엄마가 답답하다는 듯 긴 한숨을 쉬었다. 딸의 손이 곧바로 휴대폰으로 갔다. 엄마는 딸의 손과 휴대폰을 번갈아 보다가 말했다.
“너는 이제 엄마 얼굴보다 저걸 먼저 보네.” 딸은 정확히 알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했다. 엄마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럼 나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그 말이 떨어진 뒤 작업실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날 밤 준치는 프로그램을 몇 번이나 다시 돌렸다. 엄마의 한숨을 입력해 보고, 낮에 나왔던 문장들을 다시 테스트했다. 오류 기록도 뒤졌다. 프로그램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준치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모니터를 노려봤다. 오류가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프로그램은 애초부터 정답이라고 한 적이 없었다.
가능한 뜻 몇 가지와 확률을 보여줬을 뿐이었다. 화면 아래에는 ‘최종 선택은 사용자입니다’라는 문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준치는 한동안 그 문장을 바라봤다. 낮의 모녀도 선택했다. 서로 다른 숫자를.
준치는 낮에 엄마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럼 나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준치는 새 파일을 열었다. 몇 줄을 쓰고 지우다가 화면 한가운데 짧은 문장을 띄웠다. 그 아래 5초짜리 카운트다운을 넣었다. 준치가 시험 삼아 번역 버튼을 누르자 해석 후보 대신 숫자가 나타났다.
5
‘먼저 물어보세요.’ 숫자는 4, 3으로 내려갔다. 눈치를 대신 봐주려고 만든 기계가 사람을 다시 사람 앞에 세우고 있었다. 준치는 생각할수록 조금 웃겼다.
며칠 뒤 작업실에 검은 티셔츠를 입은 건장한 남자가 찾아왔다. 가슴에는 흰 글씨로 큼직하게 적혀 있었다.
‘당당맨’
남자는 의자에 앉자마자 휴대폰을 내밀었다. 눈치 번역기가 자꾸 틀리는 것 같다고 했다. 문제의 문장은 아내가 보낸 것이었다. ‘그래.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해.’ 준치는 잠시 화면을 바라봤다. 꽤 난도가 높은 문장이었다. 남자가 번역 기록을 열었다.
더 말하기 싫다는 뜻 47%
말려주기를 바라는 뜻 35%
정말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뜻 18%
준치가 화면을 보다가 남자를 바라봤다. “그래서요?”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 세 번째 줄을 가리켰다. “18퍼센트나 있잖아요.” 준치는 티셔츠의 ‘당당맨’을 한 번 내려다봤다. 남자는 세 번째 해석을 골라 친구들과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갔다고 했다. 그런데 아내는 다음 날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 앱이 틀린 거 아니에요?”
준치는 대답 대신 새 버전을 열었다. 같은 문장을 넣고 번역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먼저 물어보세요’라는 문장이 떴고 그 아래 숫자 5가 나타났다. 남자는 화면을 노려봤다. “누구한테요?” 준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자의 시선이 화면에서 준치에게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숫자는 4, 3으로 내려갔다.
“그걸 물어볼 수 있었으면 내가 이걸 왜 써요?”
남자는 팔짱을 꼈다. 가슴의 ‘당당맨’이 조금 구겨졌다. 숫자가 2로 바뀌자 결국 휴대폰을 집었다. 문자창을 열고 한동안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하다가 짧게 적었다. ‘어제 그 말, 진짜 내 마음대로 하라는 뜻이었어?’ 보내기 버튼 앞에서 손가락이 한 번 멈췄다. 그러다 눌렀다. 잠시 뒤 짧은 답이 왔다.
‘아니.’
남자는 화면을 한동안 내려다봤다. “18퍼센트였는데…….” 준치는 웃지 않으려고 입술을 한 번 깨물었다.
며칠 뒤에는 그 모녀가 새 버전을 시험하러 왔다. 딸이 주말에 친구들과 여행을 가겠다고 하자 엄마의 손이 습관처럼 휴대폰으로 갔다. 번역 버튼을 누르자 ‘먼저 물어보세요’와 커다란 숫자 5가 나타났다. 엄마가 화면을 두드렸다. 숫자는 4가 되었다.
“아니, 내가 직접 물어보기가 싫어서 이걸 쓰는 건데?”
준치는 웃음을 참으며 화면만 가리켰다. 숫자는 3, 2로 내려갔다. 엄마는 휴대폰과 딸을 번갈아 봤다.
“이번 여행이 왜 그렇게 중요한데?”
딸은 잠시 놀란 얼굴로 엄마를 바라보다, 졸업 전에 친구들과 함께 가는 마지막 여행이라고 했다. 졸업 뒤에는 모두 흩어질 예정이었다. 그 이유는 어떤 해석 후보에도 들어 있지 않았다. 숫자는 어느새 0이 되었고 화면에는 몇 가지 번역 결과가 떠 있었다. 엄마는 한 번 내려다보더니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런 건 진작 말하지.”
딸이 웃으며 말했다. “엄마가 맨날 번역기부터 켰잖아.”
모녀가 돌아간 뒤 준치는 테스트 기록을 열었다. 번역기의 정확도는 그대로였다. 대신 모녀가 서로에게 직접 물은 횟수가 늘어 있었다. 준치는 기록란에 적었다.
‘번역 속도 늦춤. 질문 늘어남.’
업데이트가 올라가자 별 다섯 개짜리 후기와 별 하나짜리 항의가 함께 들어왔다. 대화를 더 하게 됐다는 사람도 있었고, “말하기 싫어서 앱을 샀는데 왜 자꾸 물어보라고 하느냐”는 사람도 있었다. 준치는 그 항의를 읽으며 웃었다. 그래도 5초를 없애지는 않았다. 대신 직접 묻기 어렵거나 급한 상황에서는 바로 해석 후보를 볼 수 있게 했다.
새 버전을 저장한 뒤에도 풀리지 않는 사례들은 남아 있었다. 같은 “됐어”도 어떤 집에서는 대화의 끝이었고, 다른 집에서는 그때부터 진짜 싸움이 시작됐다. 한숨 하나에도 해석 후보는 계속 달라졌다.
준치는 다시 프로그램 화면을 열었다.
‘먼저 물어보세요.’
그 아래 숫자 5가 떠 있었다. 번역기는 이미 여러 개의 해석 후보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그것들을 바로 내놓지 않았다.
숫자가 4로 바뀌었다.
이번에는 기계가 기다릴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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