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아이 고무금
캐프리는 산바카라로 가장자리에서 풀 한 포기를 골라 오래 씹고 있었다. 조금 전 집에서 목줄을 물고 달려오던 기세와 달리, 밖으로 나오자 급할 것은 하나도 없다는 태도였다. 도인은 목줄을 느슨하게 쥔 채 그 옆에 서 있었다.
그때 주머니 안에서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도인은 휴대폰을 꺼내 화면에 뜬 이름을 내려다봤다.
고 무 금.
띄어쓰기까지 그대로 저장해 둔 이름이었다. 정년식장을 나설 때 한 번 걸려왔던 전화였다. 그때 도인은 화면을 잠시 바라보다 ‘나중에’하고 통화 거절을 했었다. 그 나중이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한동안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캐프리는 풀을 씹던 입을 멈추고 도인을 올려다봤다. 전화기 너머에서 가느다란 숨소리가 한 번 들린 뒤에야 무금의 목소리가 나왔다.
“삼촌…” “들리세요?” 도인은 대답하지 않고 기다렸다. 평소에도 말이 빠른 아이는 아니었지만, 오늘은 첫 단어 뒤에 다음 문장이 따라오지 못하고 걸려 있는 듯했다. 캐프리가 고개를 갸우뚱 했다.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침묵 코치가 먼저 말을 거네.” 농담을 알아들었는지 알 수 없는 침묵이 잠시 이어졌다. 무금은 웃지 않았다. 도인의 목소리가 들리자 긴장이 조금 풀리듯 아까보다 다급함이 조금 느려졌다.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것같기도 했다. 도인은 짧게 말했다.
“말해.”
다시 짧은 숨소리가 들렸다. 무금은 머릿속에서 문장을 한 번 세운 뒤 입 밖으로 내보내는 사람처럼 천천히 말했다. “제가…… 이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침묵이?” “아니, 제 직업이요.” 도인의 입가에 잠깐 웃음이 걸렸다가 사라졌다. 캐프리는 여전히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안 올 것 같습니다.”
도인은 더 묻지 않고 조금 전까지 느슨하게 쥐고 있던 목줄을 한 손에 모아 잡았다.
“거기 있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캐프리는 도인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캐프리, 귀가.” 캐프리는 곧장 몸을 돌렸다. 처음 몇 걸음은 빠르게 걸었지만, 곧 목줄이 팽팽해질 만큼 속도를 높였다. 도인도 그 뒤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평소의 느긋한 캐프리와는 달리 생각보다 뛰는게 빨랐다.
집에 도착해 목줄을 풀어주자 캐프리는 물그릇으로 가지 않고 현관 앞에 앉았다. 귀를 세운 채 도인이 신발을 다시 갈아 신는 모습을 지켜봤다. “첫날부터 외근이다.” 캐프리의 꼬리가 바닥을 한 번 쳤다. 도인이 문을 닫고 골목으로 나섰다.
고무금은 오래전부터 옆집에 살던 아이였다. 어릴 때부터 커다란 헤드폰을 끼고 다녔는데, 음악이 흘러나오는 날보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동네 아이들이 골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닐 때면 무금은 담장 아래에 앉아 헤드폰 양쪽을 손바닥으로 누르고 있었다.
말을 걸면 대답은 짧았다. 목소리의 높낮이도 거의 변하지 않았고, 문장 끝에 불필요한 말이 붙는 법도 없었다. 자세는 늘 반듯했고, 때로는 반듯하다 못해 뻣뻣해 보였다. 사람들은 무금이 한마디를 끝내면 대화도 끝난 줄 알고 돌아섰다. 도인은 늘 한마디를 더 물었다. 한번은 무금이 담장 아래에서 헤드폰을 쓰고 있기에 도인이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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