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떠나기로 작정한 순간, 과거가 돌아왔다]
나의 인도 판타지는 고등학교 때 읽은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로부터 시작됐다. 직사각형 콘크리트 교실에 앉아 그 시절 누구나 그렇듯 인서울 대학을 꿈꾸며 공부하던 나에게 손바닥만 한 또 다른 직사각형은 교실보다 더 큰 세계를 보여주었다. 이게 그놈의 여행병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나는 성인이 된 후 여행이 내 인생의 사명인 양 빨빨대며 열심히도 다녔다.
아마 지금 세대는 들어본 적도 없을 여행 바카라자인 《론리플래닛》을 들고 종이 지도에 가고 싶은 곳을 표시하며 여행을 시작했다. 폴더폰을 쓰던 시절, 가족들에게는 며칠에 한 번씩 인터넷 카페에서 이메일로 안부를 전했다. 어느새 론리플래닛은 검색창으로, 종이 지도는 구글맵으로, 폴더폰은 스마트폰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 변화의 시간을 통과하며 37개국, 100여 개 도시를 여행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37개국 안에 인도는 없었다.
왜였을까?
십 대 시절부터 꿈꾸던 인도였는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인도를 한 번도 가지 않았다. 마음속 환상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왠지 실제로 가는 순간 오랫동안 품어온 인도 판타지가 사라질 것만 같았다. 37개국을 다니며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다 보니, 그 환상을 너무 빨리 현실과 맞바꾸고 싶지 않았다.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을 상상하는 마음은 단 한 번뿐이니까.
그렇게 나는 인도를 너무너무 아껴서 좀처럼 꺼내지 못하는 옷처럼 마음 한편에 넣어 두었다. 가고 싶지 않아서 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너무 가고 싶어서 오래 남겨 두었다. 언젠가 내 삶에 권태가 올 때, 여행이 더 이상 새롭지 않을 때 마지막 히든카드처럼 꺼내 놓고 싶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30대 중후반이 되고 여행도 할 만큼 했다 싶을 때, 더 이상 새로운 곳을 모험하고 싶다는 마음이 흐릿해질 무렵 아껴두었던 인도가 문득 생각났다. 그런데 무서웠다. 그렇게 오랜 시간 아껴둔 곳인데 막상 가겠다고 생각하니 설렘보다 두려움이 먼저 밀려왔다. 사고와 소동이 끊이지 않는 여행지로 소비되는 인도, 유튜버들의 자극적인 여행 콘텐츠의 단골 배경이 된 인도는 더 이상 내가 상상하던 인도가 아니었다.
좋은 날 입으려고 아끼고 또 아끼다 보면 어느새 계절이 지나고 유행이 바뀌어 결국 한 번도 입지 못한 채 옷장에 남는 옷처럼, 나의 인도도 그렇게 너무 오래 아껴둔 탓에 이제는 선뜻 꺼내기 어려운 곳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매년 마음 한구석엔 인도여행에 대한 미련이 피어올랐다. 한 번쯤 용기를 내볼까 싶다가도 막상 항공권을 검색하고 여행을 그려보기 시작하면 마음은 다시 주춤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사서 고생을 하던 시절도 분명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굳이 힘든 여행을 선택하지 않게 되었다. 적당히 편하고 익숙한 여행이 내심 지루하다 싶으면서도, 막상 다시 힘든 여행을 할 용기는 잘 나지 않았다.
그래도 인도는 여전히, 문득문득 생각이 났다. 갈까, 말까. 지금이라도 가야 하나, 아니면 그냥 오래 품었던 환상으로 남겨 두는 게 나을까. 그렇게 몇 번이고 마음속에서 인도를 꺼냈다가 다시 넣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그 무렵, 한 사람이 불쑥 물었다.
“같이 인도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