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집 마당에는 사람 손때가 묻은 가구들 대신 누런 종이 박스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미나는 이미 짐을 뺐고, 안경 총각도 고시원 근처로 거처를 옮기기로 했다. 나 역시 며칠 뒤면 이 언덕길을 내려가야 했다. 집안 곳곳에 붙어있던 온기는 짐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따라 빠르게 식어갔다.
"아줌마, 이제 솥단지 그만 씻으시고 짐 싸셔야죠. 내일이면 트럭 온다면서요."
내가 박스 테이프를 뜯으며 말하자, 주방에서 부득부득 소리를 내며 솥을 닦던 정희 씨가 고개를 내밀었다.
"이 가시나야! 내일 떠나더라도 오늘 저녁은 묵어야 될 거 아이가! 이 집 가스 불 꺼지는 순간까지 내 주방은 영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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