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골목 곳곳에 붉은 깃발이 꽂히기 시작했다. '재개발 확정', '이주 대바카라 마련' 같은 서늘한 글자들이 적힌 현수막이 동네 입구를 점령했다. 하숙집 초록 대문에도 예외 없이 하얀색 딱지가 붙었다. 곧 허물어질 집이라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표식이었다.
하숙생들 사이에서도 술렁임이 일었다.
"아줌마, 진짜 우리 나가야 돼요? 여기 허물면 아줌마는 어디로 가시는데요?"
평소 같으면 "걱정 마라, 내 국자가 살아있는 한 밥 안 굶긴다!"라고 호통을 쳤을 정희 씨였다. 하지만 그날 정희 씨는 주방 한구석에서 멍하니 끓어 넘치는 숭늉 냄새만 맡고 있었다.
"아지매, 국물 넘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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