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의 평화로운 오후를 깨뜨린 건 초록 대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였다. 평소 하숙생들의 조심스러운 노크와는 차원이 다른, 무례하고도 절박한 소리. 앞치마에 물기를 닦으며 나가던 정희 씨의 발걸음이 대문 앞에 선 남자를 보자마자 돌처럼 굳어버렸다.
"니가... 니가 여를 와 왔노?"
정희 씨의 목소리가 평소의 호통과는 달랐다. 쇳소리가 섞인 듯 낮게 떨리고 있었다. 대문 앞에는 값비싸 보이지만 때 묻은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정희 씨의 눈을 피하며 비굴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누나, 여전하네. 하숙집 한다더니 진짜네. 내 소식 들었지? 이번에 사업만 잘 풀리면..."
"입 닥치라! 내 귀 더럽히지 말고 퍼뜩 꺼지란 말이다!"
정희 씨가 국자를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남자는 정희 씨의 친동생이었다. 십수 년 전, 정희 씨가 아들의 수술비를 위해 모아둔 돈을 사업 자금이라며 들고 도망갔던, 정희 씨 인생에 가장 깊은 낙인을 찍은 혈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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