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AI와 함께 출근한다

- 나는 다섯 번째 계절을 맞이할 수 있을까?

by늘푸른 노병


오늘 아침도 다섯 명이 먼저 출근해 있었다.


글로벌 방산시장을 뒤지는 녀석, 사업과 연계한 뉴스를 찾는 녀석, 국내 파트너를 훑는 녀석, 앞서 올라온 자료가 사실인지 다시 캐묻는 녀석, 그리고 검증한 자료를 최종적으로 종합해 내게 보고하는 AI 본부장 녀석까지.


사람은 아니다. 내가 만들어 놓은 다섯 AI 에이전트다.


밤사이, 혹은 정해진 시간마다 녀석들이 올린 보고서부터 살핀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어디에 사업 기회가 있는지, 어떤 기업과 연결해 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정보가 믿을 만한지까지 한눈에 훑는다.


나는 보고서들을 읽으며 다시 질문한다.


‘이 근거는 뭐야?’


‘믿을 만한 정보야?’


‘출처를 밝혀봐.’


‘우리 사업과 실제로 연결할 수 있을까?’


그러면 다시 자료를 찾고, 비교하고, 보완한다. AI가 모으고 정리하지만, 마지막 판단은 내 몫이다.


나는 요즘 이렇게 하루를 연다.



처음부터 AI를 잘 알았던 것은 아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AI는 궁금한 것을 물으면 답해주는 신기한 검색 도구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다 업무 자료를 조사하기 시작했고, 조금 익숙해지자 보고서 작성에도 활용했다. 그다음에는 반복적으로 필요한 일을 맡겨보기 시작했다.


지금은 여러 에이전트가 각각 다른 일을 하고, 마지막에는 검증된 결과를 다시 종합한다. 혼자 찾아보고 정리했다면 몇 시간씩 걸렸을 일을, 짧은 시간 안에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점잖게 표현하면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내가 체감하는 변화는 그보다 크다. 단순히 일을 빨리 하게 됐다는 것과도 다르다.


가끔은 쓰나미처럼 느껴진다.


상황판에 도표를 손으로 그려 넣던 내가, 이제는 AI가 정리한 보고를 아침마다 받는다.


생각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넓어졌다.


전에는 내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질문했다. 지금은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까지 알게 된다.


예전에는 궁금한 것이 생겨도 사소한 것을 자꾸 묻는 것 같아 그냥 넘길 때가 많았다. 이제는 다르다. 일을 하다가 궁금한 것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묻고, 답을 읽다가 모르는 것이 나오면 또 묻는다.


몰랐던 것을 하나씩 알아가면서 일을 하니 재미가 있다. 하나를 물으면 또 다른 질문이 생기고,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길이 열린다. 그래서 하루 종일 AI와 이야기하면서도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시간이 부족하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다 보니, 정년이라는 말이 예전과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다.


정년은 흔히 끝으로 읽힌다. 온라인 게임을 나서고, 일에서 한 걸음씩 물러나고, 남은 시간은 가볍게 보내는 것. 나도 그게 순서인 줄 알았다.


지금은 다르게 본다.


몸은 예전 같지 않다. 그건 인정한다. 그렇다고 늙기를 기다리며 살 이유까지는 없다.


젊을 때 나에게는 힘이 있었고 경험이 없었다. 지금은 힘이 줄었고 경험이 남았다. 수십 년 부딪치며 얻은 판단, 사람에게서 배운 것, 실패의 기록, 운이 따라준 몇 번의 순간. 그것들이 이제야 제 무게를 갖는다.


나무도 그렇다. 삼사십 년 비바람을 견딘 나무는 가지가 단단해지고, 때가 오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자라는 시간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두는 시간이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꺼내 쓰는가다. 경험만 붙들면 고집이 된다. 새로운 도구를 만나야 경험은 다시 움직인다. 나에게 그 도구는 AI다. 내 경험에 AI의 속도와 정보가 더해지자, 못 할 거라 여겼던 일이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나이가 경험을 쌓아주었다면, AI는 그 경험을 다시 걷게 했다.


그래서 정년이라는 말을 요즘은 이렇게 읽는다. 놓아야 할 나이가 아니라, 가꿔 온 것을 써 볼 나이.


아직 꽃이 질 때가 아니다.


성장하는 마음마저 늙을 이유는 없다. 나이는 어쩔 수 없어도.



모르는 게 생기면 묻는다. 답이 오면 또 묻는다. 에이전트가 가져온 자료를 읽고, 모자라면 다시 조사시키고, 다른 각도에서 보라고 주문한다. 그러다 문득 처음 던진 질문과 전혀 다른 자리에 서 있을 때가 있다.


예전에는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이제는 조금 고쳐 읽는다.


세상은 질문하는 만큼 보인다.


AI 곁에서 알게 된 게 하나 더 있다. 좋은 답보다 좋은 질문이 먼저라는 것.


그런데 요즘 나는 또 한 번 낯선 자리에 서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AI가 어디까지 우리 삶을 바꿀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나는 가능하면 그 파도를 피해 물러서 있기보다, 한 번 올라타보고 싶다.


잘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배우기를 멈추지는 않을 생각이다.


군대, 대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 나는 그렇게 네 번의 계절을 건너왔다.


나에게도 다섯 번째 계절이 올 수 있을까.


나는 그 계절을 기다리지만은 않으려 한다.


오늘도 다섯 명의 AI 참모와 함께 출근한다.




이 이야기의 앞자락은 「네 번의 계절을 건너고 나서야 보인 것」에 담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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