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년의 조직생활이 남긴 질문
오늘 아침, 유난히 맑은 하늘을 보다 아내에게 김포 '애기봉'에 가자고 했다. 별다른 준비 없이 나선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두어 달 전, 흐린 날씨 탓에 북녘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아쉬움을 털어내듯, 오늘은 시야가 확 트여 있었다.
해설사의 설명 중 유난히 귀에 꽂히는 대목들이 있었다. 한강 하구 수역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대의 흐름으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새마을 운동, 김신조 사건, 교련복, 예비군 창설, 주민등록증 발급과 신원확인 등 내가 온몸으로 겪어낸 청춘의 풍경들이었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요즘 쓰고 있는 내 글들이 스쳐 지나갔다. 고등학교 때 교련복을 입었고, 졸업 후 곧바로 3사관학교에 입교했다.
바깥세상을 알기도 전에 내 삶은 온통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첫 번째 계절은 그렇게 끝났다.
군에서 30년을 보내며 사람도 조직도, 그 시대의 거친 공기도 적잖이 겪었다. 그래서 군 밖 세상도 웬만큼은 안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그것도 내 착각이었다.
운 좋게 대기업에 들어가 12년을 보냈다. 조직의 언어도 달랐고,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도 달랐다. 출신과 학벌, 보이지 않는 관계까지 새롭게 배워야 했다.
사람 사는 곳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했지만, 버티고 살아남는 방식은 달랐다.
그렇게 두 번째 계절을 지나 정년을 맞았다.
방산 분야의 인연으로 중소기업을 거쳐 지금은 두 번째 스타트업에 몸담고 있다.
세 번째, 네 번째 계절이다.
평생 조직 속에서 살아오면서 세대 차이를 크게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군이나 대기업처럼 오래된 조직에서는 이미 만들어진 규칙과 시스템 안에서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해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많은 스타트업은 달랐다.
MZ세대라 불리는 젊은 동료들과 가까이에서 일하다 보니 이해되지 않는 순간들이 참 많았다.
‘왜 저렇게 생각하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속으로 삼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탕비실 수건도 그랬다.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공용 수건은 며칠만 지나면 축축해졌다. 보다 못해 어느 날 슬쩍 빨았다. 옆에 후배가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심 생각했다.
‘내가 하는 걸 봤으니 다음부터는 알아서 하겠지.’
완전히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그 후배에게는 수건을 빠는 일이 애초에 자기 몫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한동안은 이렇게 생각했다.
‘역시 우리 세대와는 DNA가 완전히 다른 모양이다.’
각자 살아온 방식이 다르니 그냥 서로의 방식대로 사는 편이 낫겠다고 여겼다.
그런데 연재를 시작하면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에는 연재 제목을 “MZ세대와 일하며 내가 배운 것”으로 쓰려 했다.
젊은 동료들을 이해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글이 한 편씩 쌓일수록 이상한 일이 생겼다.
젊은 사람들을 들여다보려 했는데, 자꾸만 내가 보였다.
왜 나는 내 방식이 당연하다고 믿었을까.
왜 경험이 많은 사람이 먼저 알려주는 것이 늘 옳다고 생각했을까.
경험은 언제까지 지혜이고, 어느 순간부터 고집이 되는 것일까.
질문의 끝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
그래서 지난 3월부터 써온 22편의 글을 묶어 온라인카지노북의 제목을《대령 출신 부사장의 까치발》로 지었다.
제목에 ‘까치발’을 넣은 사연은 이렇다.
출근 후 업무가 시작되는 9시 전까지는 각자의 시간이었다. 헤드셋을 쓰고 모니터에 빠져 있는 직원도 있었고, 몇 분이라도 더 눈을 붙이려는 직원도 있었다.
그 시간만큼은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사무실을 오갈 때면 구두 소리를 줄이려고 나도 모르게 까치발을 들곤 했다.
처음에는 그런 내 모습이 조금 낯설었다. 그러나 함께 일하려면 내가 익숙한 방식만 고집할 수는 없었다.
가르치려고만 하지 않고, 때로는 내가 먼저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붙인 제목이었다.
군대, 대기업, 중소기업, 그리고 스타트업.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는 다시 배워야 했다.
이번에 발간한 온라인카지노북은 그 마지막 계절에서 만난 젊은 동료들과, 그들을 이해하려다 나를 다시 보게 한 이야기다.
나는 여전히 다음 계절을 향해 조용히 까치발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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