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8] 에필로그-(29)
백제를 만나러 갔다가, 결국 나 자신을 만나고 돌아왔다.
백제를 공부하려고 길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오래된 성곽을 걷고, 연꽃을 보고, 백마강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런데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여행은 역사가 되었고, 역사는 다시 내 이야기가 되었다.
공산성에서는 무너져도 다시 일어서는 힘을 보았다. 궁남지에 이르러서는 강한 나라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나라가 오래 기억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정림사지에서는 돌이 천오백 년의 시간을 견뎌내는 모습을 마주했고, 익산 미륵사지에서는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다시 세우는 데는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황산벌에서 만난 이는 패배를 알고도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킨 계백이었다.
그리고 부소산성에 올라 백마강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그러나 역사는 끝나지 않는다.
백제는 660년에 사라졌다.
그러나 백제는 서울 몽촌토성, 풍납토성을 시작으로 아직도 공주와 부여, 익산 등 곳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역사는 결국 사람을 통해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긴 세월을 군에서 보냈고, 다시 슬롯를 걸으며 또 다른 길을 살아가고 있다. 돌아보니 사람도 나라와 닮았다.
무너질 때가 있고, 다시 일어설 때가 있다. 꽃을 피우는 시간도 있고, 마지막을 받아들이는 순간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존재했느냐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어떻게 기억되느냐일 것이다.
백제를 걸으며 오래된 역사를 본 것이 아니다. 나의 지나온 시간을 다시 걸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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