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을 이어온 전통 방식의 누룩 제조법
최근에 수제맥주 1세대 기업들이 파산 또는 법정관리에 들어간다는 뉴스를 연거푸 접했습니다.
코로나 시기 홈술과 노재팬의 영향으로 국내 수제맥주에 대한 인기가 굉장히 높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수제맥주'라는 명칭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대규모 인프라를 갖춘 대기업군의 정형화된 술과는 달리 수제맥주 브랜드는 지역의 특성에 맞는 풍미와 산미를 가진 맥주를 제조해 왔기에 주류 문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아쉬운 마음입니다.
한편, 그래서 그런지 이러한 시장의 변화 속에서도 꿋꿋이 전통의 방식으로 자신의 철학을 지켜나가는 지역 전통주 브랜드들에 더 관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부산의 대표적인 전통주인 '금정산성 막걸리'도 그중 하나인데요. 부산에 사는 분들이 아니더라도 금정산에 대해서는 한 번씩 들어봤을 겁니다. 최근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도 했고, 부산에 산이 참 많지만 그 산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산으로 꼽히는 곳입니다. 금정산은 금정산성과 범어사를 품고 있는데 산성 내에는 약 500년 전부터 전통 방식의 누룩을 만들어서 막걸리를 제조해오고 있습니다.
이는 이곳의 지리적 특징과도 관련이 있는데 지대가 높고, 논농사보다는 밭농사가 가능한 경지가 많아 밀 재배가 활발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나온 밀을 물과 섞은 반죽을 바탕으로 건조와 발효를 통해 누룩을 만들어 구포시장 등에 내다 파는 것이 주요한 생계수단이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누룩에 찐쌀로 만든 고두밥과 물을 섞어 발효시키면 그것이 막걸리가 되는 것이었죠.
금정산성막걸리를 만드는 회사의 정식 명칭은 '유한회사 금정산성토산주'인데 현재 식품 명인으로 선정된 유청길 대표를 필두로 산성 마을주민 약 100여 명이 공동주주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흡사 농업법인 느낌이 나기도 하는데, 지금이야 연매출이 25억 원 내외 수준으로 꽤나 번듯한 전통주 브랜드가 되었지만 처음부터 잘 됐던 건 아니었습니다. 이는 주류 제조 정바카라에 대한 역사와도 맞물려 있는데, 과거로 올라가면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이 국내의 전통주 제조를 통제할 목적으로 주세법이라는 걸 만들어 전통주 제조를 허가제로 바꿨습니다. 통제와 감시를 통해 우리나라의 전통주 생산을 제한하려는 목적이었죠.
그리고 해방 이후에는 워낙에 먹고살기 어려웠던 형편이라 곡류가 굉장히 귀했죠. 그러다 보니 정부에서는 1965년에 양곡관리법을 제정하여 먹고 살기에도 부족한 곡류를 활용하여 술을 만드는 걸 금지했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일리가 있는 조치였죠. 그러나 전통주를 제조하는 입장에서는 정식 허가도 받지 못하고, 비즈니스로서의 발전을 이루기에는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양조장이 허가도 받지 못하니 밀주 형태로 집집마다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1979년 부산을 방문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이러한 사정으로 어려움을 겪던 산성마을 막걸리의 사정을 부산시장으로부터 보고 받고 대통령령으로 대한민국 민속주 1호로 지정하게 되어 밀주가 아닌 합법적인 양조를 시작하게 됩니다.
또한 1998년에 현재의 유청길 대표가 대표직을 맡으면서 여러 가지 변화를 시작하게 되는데요. 유청길 대표는 사실 처음부터 이 막걸리 일을 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공무원, 교편생활을 하다가 IMF 외환위기 이후 고향인 산성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했는데 마을 어르신들의 권유로 양조장 운영을 맡게 됐죠. 사실 당시 막걸리가 잘 팔리지도 않았고 회사 운영상황도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리적 부담도 컸고, 여러 가지 고민들 끝에 결국엔 본질에 충실하자는 결론을 내렸고 막걸리 품질관리에 전념합니다. 초반에는 여러 형태로 제조한 막걸리를 버리는 양이 상당해서 마을 어르신들로부터 핀잔도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아무튼 여러 가지 노력 끝에 예전부터 대대로 해오던 전통적인 발로 밟는 족압식 누룩 제조를 표준화하고 누룩과 쌀, 물, 첨가물 등의 배율을 조율한 끝에 현재 시판되는 막걸리로 탄생하게 됩니다. 보통 산성막걸리를 드셔본 분들은 알코올 도수가 8도짜리를 많이 드셔봤을 텐데요. 현재는 막걸리 제품군이 3개인데 오리지널인 8도 막걸리와 도수가 5도인 막걸리, 그리고 2021년에 새롭게 출시한 도수 5도의 금정산성막걸리 청탁이 있습니다. 지평막걸리 등 막걸리 시장에서도 저도주 트렌드가 강해지다 보니, 유청길 대표에 이어 가업을 잇고 있는 유 대표의 아들분이 주도적으로 기획을 해서 나온 술이라고 합니다.
금정산성 막걸리는 이제 K-푸드의 인기와 함께 단순히 막걸리 자체뿐만 아니가 막걸리 양조장 체험에 대해서도 외국인을 비롯해서 많은 분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데요.
전통 막걸리의 제조과정을 구분하여 1. 누룩 딛기 2. 막걸리 빚기 3. 막걸리 거르기로 나눠서 체험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회사 워크숍 등 다양한 단체에서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막걸리 자체가 하나의 관광체험 콘텐츠로 작용하는 것이죠.
지역균형발전과 로컬 브랜드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정말 지역의 브랜드가 인지도와 경쟁력을 가지고 시장에서 성장해 나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부산의 대표 전통주인 금정산성 막걸리는 막걸리 본질에 충실한 철학을 기반으로 계속해서 다양한 성장을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저녁은 반주로 곁들일 산성막걸리 한 병을 사 와야겠습니다(웃음)
[CPBC라디오] 금정산성 막걸리 편 (30분 이후부터)
https://www.youtube.com/live/fdy2SvJbIf4?si=Md67pip93G2RB98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