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취업은 항상 어렵다.
계절을 바꾸려는 듯 세찬 비가 내리던 날, 내비 안내에 의존한 채 판교로 달려갔다. 비도 신경 쓰였지만, 너무 멀게 느껴져 미적대다 출발한 터였다. 늦게 출발한 데다 길도 복잡해서 겨우 약속된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4개월 재충전 끝무렵, 수십 군데 이력서를 낸 곳 중 여기서 처음으로 면접을 보자고 했다. 생명공학연구소 건물 시설과장 직바카라이다. 전기에 한정되지 않고 시설 전체를 담당해야 하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지만, 부딪쳐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았다. 무엇보다 기대 이상으로 제시된 보수의 유혹을 무시할 수 없었다. 면접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이틀 후 결과를 통보해 주겠다는 언질을 받고 돌아왔다.
다음 날, 나는 이대역으로 달려가는 2호선에 몸을 싣고 있었다. 두 번째 면접을 보러 가는 길이다. 대학교 기숙사 전기안전관리자이다. 직바카라 명 없이 단순히 전기안전관리자 만을 선발한다는 게 의아했지만, 시종 면접의 분위기는 좋았다. 면접을 주관하던 사람들의 만족스러운 표현을 계속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선발하려는 경력유지자의 개념과 맞는 것 같았다. 면접이 끝날 무렵, 나는 시설을 돌아볼 수 있느냐는 제안을 했다. 불현듯 최종 결심을 하는 데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면접관들이 흔쾌히 기회를 주었고,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면접을 끝냈다. 집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전철역으로 걸어가면서, 이 길을 자주 오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민이 시작되었다. 만약 두 군데서 모두 오라고 한다면, 어느 곳을 택해야 하는지를 두고 말이다. 어쩌면 떡 줄 놈은 생각도 안 했는데 김칫국부터 먹는 격일 수도 있었다. 왠지 어느 곳이든 불러줄 것 같은 느낌이 고민을 부추겼다. 한쪽은 경험해 보지 못한 험난한 길일테지만, 더 크게 성장하는 것은 물론 심심찮은 보수를 받는 자리이다. 다른 곳은 직바카라도 없이 허접한 일을 해야 하고 받는 돈도 성에 차지 않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적고 다양한 일들을 배울 수 있다. 혼자 고민하던 끝에, 아내와 아들에게 두 자리를 비교해 설명하며 의견을 물었다. 가족들의 의견은 정확히 일치했다. 보수는 적어도 괜찮으니 스트레스 많이 받지 않는 곳이다. 결국 두 번째 면접을 본 곳에서 오라는 연락이 와서 자연스레 가족들이 바라던 곳으로 가게 되었다.
중장년이 되어, 본래 다니던 온라인 게임에서 퇴직하고 재취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일을 꼭 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한 확고한 논리를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그마한 심리적 충격이 와도 쉽게 그만두고 싶은 유혹을 벗어나지 못한다. 마치 한 발을 뒤로 빼고 한 발만 어설프게 딛고 눈치를 보게 되는 형국이다. 이런 심리는 현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과의 유대에도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지인들 중에도 근무지를 자주 옮겨 다니거나, 몇 달 다니다 그만두고는 다시 취업하기를 꺼려하는 사람이 있었다. 일을 해야 하는 자신 만의 확고한 논리는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에 한다.
다른 하나는, 전에 누렸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낭떠러지를 극복해야 한다. 대게 적응에 실패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퇴직 전, 온라인 게임에서의 위치에 따라 당연히 주어졌던 대우와 관계에서의 우위에 대한 감정은 하루빨리 잊어버려야 한다. 물론 허탈해하며 겪어야 하는 심리적 공허감이 크다. 왕년에~ 왕년에~라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경우를 수없이 당하기도 한다. 특히 사람관계에 있어 자신을 보잘것 없이 바라보는 시선에 많은 괴로움을 느낀다. 이 분야에 오랜 경험을 보유한 이들을 당해 낼 재간은 없다. 빨리 어느 정도의 선까지 다다라야 대화가 통하면서 동료로서의 대우가 주어진다.
벌써 세 번째의 재취업 전선에 서봤다. 두 번째 전선까지 많은 면접을 보며 애를 태웠던 것에 비하면, 이번은 두 번의 면접으로 끝이 났다. 이력서를 내었던 모든 곳의 지원을 철회하고, 새로운 온라인 게임에 첫 출근을 했다. 기대했던 만큼의 근무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으나, 그동안의 근무 경험으로 충분히 극복 가능한 정도였다. 전 근무지에서 행정일로 눈코 뜰 새 없었다면 여기서는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일 때문에 자리에 앉아 있을 틈이 없었다. 재충전의 여유로움에 젖어있던 내 몸이 피곤함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일을 차고 나갈 능력이 없으면, 눈치 빠른 보조역할이라도 충실해야 한다. 그나마 꾸준하게 헬스를 해왔던 덕에 버텨갈 수 있어 다행이다.
시설 현황의 파악은 물론,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보조역할로 파김치가 되어 퇴근한다. 아내에게는 잘 적응하고 있는 것처럼 티 내지 않으려 하지만, 노곤해진 몸이 말을 한다. 아내가 술 먹었을 때만 골던 코를 그냥 자면서도 많이 곤다며 타박이다. 글을 써야 한다는 의지도 쉽게 꺾인다. 다급한 마음에 바카라상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지만, 어느 절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덕분에 이번 글이 완성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온라인카지노에서 경고를 받았는데도 어쩔 수 없었다. 이제야 겨우 발행한 글, 재취업 전선에서 고민하고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