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달해야 하는 삶의 경지
초연하게 산다는 것.
나이가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 때부터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문구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초연하게 사는 것인가? 이렇듯 '초연'이라는 단어에 관심이 많았으면서도, 막상 진정한 의미는 살펴보지 않고 지내왔다.
나는 속 뜻과 우러나오는 느낌 같은 것이 궁금한 단어들이 많다. 그중에서 '초연하다'는 빨리 알아보고 싶은 말이었는데, 단편적인 의미를 초월한 느낌까지 짚어내기는 어려웠다. 무엇에 체한 듯 불편한 마음 상태였는데, 우연히 김소연 작가의 '마음사전'이라는 바카라을 볼 기회가 생겼다. 다른 글을 읽으면서 힌트를 얻어 급히 주문했던 바카라이었다. 작가는 유사한 단어라도 의미와 느낌 차이를 정성스럽게 대별했고, 단어 하나하나에 대한 자신 만의 속 뜻을 풀어내기도 했다. 단어가 주는 일반적인 의미를 넘어, 내면의 느낌을 세밀하게 드러내려는 친절과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내가 한 행동에 대해 이번처럼 칭찬해 주고 싶었던 것은 처음인 듯싶다.
'초연하다'는 사전적으로 '어떤 현실 속에서 벗어나 그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젓하다.'라는 의미이다. 마치 '번뇌의 얽매임에서 풀리고 미혹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다.'의 뜻을 가진 '해탈하다'와 유사하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의미로 보면, 무조건 현실의 얽매임에서 벗어나야 만 첫출발이 가능할 것 같은 의무감을 준다. 단순히 현실을 도외시하는 삶이라면, 왜 모두가 선망하는 인생살이로서의 '초연하다'이겠는가? 분명 깊이를 담은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의 시작점이다. 차분하지만 집요한 생각의 꼬리물기로 '초연하다'의 의미를 추적해 보았다.
초연하게 사는 것은, 적나라한 현실 속에서 추구되어야 한다. 현실을 외면하면서 무기력한 태도를 유지하거나 세상 일과 거리를 두고 무관심하게 사는 것이 절대 아니다. 회피도 도피도 없이 온몸으로 부딪치는 것이다. 삶에서 계속적으로 맞닥뜨리는 선택의 순간을 고의로 돌아가려 하거나 모른 척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현실 속에 두 발을 단단하게 딛고 최선의 선택을 해내는 일이다. 그러면서도 마음의 단단함과 평온함을 잃지 않으며, 중심을 잡고 있는 상태여야 한다. 자신 만의 일관된 기준을 가지고 있어 남들의 평가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초연하게 산다는 것은, 어쩌면 기어코 도달해야 만 하는 삶의 경지일 수 있다.
올해 들어 친한 지인이나 부인 상의 조문을 많이 했다. 최근에 조문을 다녀온 날, 문득 죽음이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부인 상을 당했던 친구를 다시 만나 술잔을 기울인 적이 있다. 심정적 공허감을 토로하며 눈물을 훔치던 모습을 보며, 다시 죽음을 생각했다. 그는 그녀와의 하루하루가 소중했음을 그녀가 없어지고 깨달은 것을 절절하게 아쉬워했다. 그만큼 가족들에게 헌신적이었던 산소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죽음 이후에야 은근하지만 적나라한 평가를 받게 된다. 살아있는 동안 그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말이다. '초연하게 산다는 것'은 이 대목에서 가치를 발한다고 생각된다.
오늘, 세상에서 없어지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세상 속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는 것은 물론, 타인과의 공감을 소중히 여기고 선택의 순간순간들에 정정당당했다는 평가가 그립다. 지난 날, 세상일에 한 발 떨어져 체념한 듯 산 기억들이 후회스럽다. 이런 생각에 이르니 조급해진다. 드라마 같이 이어지는 삶에서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 만의 가치 평가로 살아내고 싶다. 그러러면 세상소리를 멀리 할 수는 없지만, 무분별하게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 또한, 타인의 감정에 무관심하거나 냉담한 초연함이어서도 안된다. '초연하게 살고 싶다.'는 심지가 굳게 지켜지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앙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