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는 변한다
"지하 1층에 내어놓은 카펫, 1층 분리수거장으로 옮겨 놓아요." 출근하던 아내가 전화로 던진 말이다. 아마 폐기물 수거업체에서 1층 왔다가 없으니, 전화했었다 보다. 주민센터에서 받아온 폐기물 스티커 붙여, 어제저녁 지하 1층 분리수거장에 내어놓았었다. 분양받아 새 집에 들어오는 설렘이 구매욕을 부추겨 식탁 밑에 깔려고 샀었다. 의도했던 그림이 나오지 않았고 사용하기 불편함도 드러나, 오랫동안 둘둘 말린 채 구석에 볼품없이 서있었다. 작년부터 거실 탁자 밑에 깔아놨었는데, 올이 엉켜 보기에 좋지 않고 청소하기도 불편했다. 결국, 카펫은 6년 동안 곁에 머물다 폐기물 신세가 되어 떠나갔다.
상상했던 쓸모를 충족하지 못한 죄! 카펫에 씌워진 죄목이다.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 더 유용함을 안겨주며 대우받고 지낼 수 있었는데, 우리가 오인 상상한 결과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 깊이 없이 가볍게 했던 구상 때문에 카펫이 죄를 덮어쓰게 된 모양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늘 눈 안에 머물렀던 것을 이제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 벌써 주변을 정리해야 할 시기가 되었나 하는 씁쓸함이 묘하게 겹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카펫을 처리하는 과정을 통해 '쓸모없음'이라는 말의 가혹함이 가까이 다가왔다. 이처럼 물건은 유용함에 따라 쓸모가 평가되는 것 같은데,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 백수로 있으면서, 가끔 나의 쓸모에 의문을 가져봐서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것 같다.
쓸모는 '쓸 만한 가치', '쓰이게 될 분야나 부분'이다. 자구 별로 의미를 뜯어보면, '쓸'은 ‘쓰일’, '사용될'이고, '모'는 '어떤 물건이나 사람의 생김새, 모양, 또는 가치'를 나타낸다. 언뜻 쓸모는 유용성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유용성을 누가 어떻게 판단하는가?"라는 물음에는 대답이 궁색해진다. 유용성은 절대적 기준이 아니고, 시기나 대상, 장소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 개념에 가깝기 때문이다. 어떤 이에게는 쓸모없다고 해도 그것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유용할 수 있고, 지금은 하잘 것 없지만 시기를 잘 만나면 제 역할을 톡톡히 할 수도 있다.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쓸모에 대한 평가가 더 신중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쓸모없는 사람처럼 취급당해 본 경험이 있다. 해군에서 현역 소령으로 근무할 때였다. 수상함에서 근무하다 차출되어, 6개월의 잠수함 교육을 막 마치고 부임한 함정에서였다. 그 잠수함은 곧바로 하와이로 파견 교육훈련을 떠나야 했다. 나의 실질적인 첫 항해가 된 셈이고, 하와이까지 첫 원거리 항해라는 무게 때문에 전임자와 같이 출발했다. 잠수함 교육을 받았다고는 하나, 모든 것을 처음 경험하는 문외한에 불과했다. 마치 소령에서 소위로 강등된 것 같은 감정이었다. 모든 보고와 대화는 전임자를 통해서 이루어졌고, 나는 철저히 투명인간이 되어 배회했다. 나의 쓸모없음은 하와이에 도착하기까지 한 달 동안의 수중항해 내내 이어졌다.
한 달의 교육훈련을 마친 후 하와이항을 빠져나오자 나의 쓸모는 살아났다. 쓸모를 인증받기 위한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계속 근무할 사람에게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는 당위성도 역할을 했다. 과정을 통해서 쓸모를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비참함을 톡톡히 경험했고, 지금도 생각하면 우울한 기분이 몰려오곤 한다. 또 다른 관점에서,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는데 왜 그리 조급한 마음에 애달파했는지 아쉽기도 했다. 사람 쓸모에 대한 평가를 섣부르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평가를 위한 충분한 시간, 폭넓은 관점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이 없이 평가된 쓸모는, 자칫하면 삶의 의욕을 상실하게 만드는 결과까지 발전하게 때문이다.
전기 교육을 받으면서 만났던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던 말이 생각난다. "이력서를 내도 면접의 기회를 갖기 힘들다. 아마 나이가 쓸모를 판단하는 제1요건인 것 같다."라며 불평을 토로했다. 그들 대부분은 지속적으로 쓸모를 증명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을 보냈다. 이제 그 시기는 지났지만, 자신의 또 다른 쓸모를 찾아 나선 참이다. 그들은 나이를 장애로 생각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문제점은 경력이다. 사람을 쓸 곳은 경력을 갖춘 사람을 요구하고 대상자는 일단 경력을 쌓을 곳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최소한의 쓸모를 인정받아 조기에 경력 쌓는 기회를 갖기를 기원해 본다.
시간이 지나면 쓸모는 변한다. 본인의 의지와 노력, 상황의 변화, 관점의 전환에 따라 바뀔 수 있다.
백수에서 온라인 게임인으로 전환을 시도할 시기가 다가온다. 나의 쓸모는 어떻게 평가될지 궁금해지는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