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이해하고 배려하며
러닝머신 앞 유리창 너머 두 사람이 보인다. 남자는 흔들리는 몸을 겨우 가누며 짧은 보폭으로 느리게 걷고 있다. 여자는 온통 시선을 남자에게 고정한 채, 두 걸음 뒤에서 따라 걷는다. 헬스장 오는 길일 거라 상상하지 않았는데, 두런거리는 소리와 함께 출입구로 들어서고 있다. 가까이서 보니 남자는 뇌병변장애가 있었던 듯싶다. 그들은 정해진 순서 마냥 나란히 실내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젓기 시작한다. 여자는 남자가 페달에 발은 제대로 끼웠는지, 손잡이는 단단하게 잡았는지를 확인한 후에야 옆의 자전거에 올랐다. 이 시간 대에 처음 헬스장에 간 나는, 이렇게 그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
그들은 삼 십분 정도 자전거를 타고나면, 늘 레그프레스를 시작으로 다섯 군데의 기구를 순회했다. 남자가 위태롭게 기구 사이를 이동할 때 늘 여자는 옆에서 따라다녔다. 기구에 도착하면, 먼저 무게나 의자 높이 등을 조절한다. 남자가 운동을 시작하면 그때서야 여자도 옆 기구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여자는 운동 내내 남자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으며, 힘이 들 것으로 여겨지는 기구에서는 간간히 물을 떠다 먹이기도 했다. 남자는 걸음 걷는 모습에 비해 운동기구에서 팔과 다리의 사용은 자유로운 듯 보였다. 여자의 헌신이 만들어낸 놀라운 결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훤칠한 키와 이목구비가 뚜렷한 남편에 비해, 부인은 몸이 왜소하고 미의 기준을 비껴간 얼굴이다. 사연이야 어떻든지 간에 결혼 무렵에는 심정적 불균형이 있었을 법했다. 칠십 후반으로 보이니, 얼추 오십 년 넘게 부부의 연을 이어오고 있는 셈이다. 어려운 시대에 함께 인고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겠지만, 남편의 뇌병변장애 발병 이후부터 부인은 형극의 시간을 보냈을 것 같다. 부부를 볼 때마다, 그들이 헤쳐 나왔을 삶의 질곡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궁금한 게 있었다. 지금도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앞으로 ‘이들 부부가 가장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였다.
아버지가 봉안당의 어머니 유골함이 보이는 유리를 두 손으로 어루만지며 이야기하고 있다. 어머니와 대화가 얼추 십 분도 넘게 이어지곤 한다. 육 년째, 매 번 어머니 유골함 앞에 가면 볼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남동생 하고 같이 왔을 때도 어긋남 없이 그랬다고 했다. 대화의 내용을 다 듣지는 않았지만, 먼저 떠난 아쉬움과 더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다. 집에는 아직 어머니 물품이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정리를 해주겠다고 해도 막무가내 그대로 두라 한다. 그럴 때마다 궁금해지는 것은, '아버지가 마음속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뭘까?'였다,
서울에서 다섯 시간 넘게 달려간 장례식장은 안타까움을 같이 나누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오랫동안 지병을 앓아오던 친구의 아내가 영면했다. 이제 자식들도 다 잘 되고 즐겁게 보내야 할 시기, 병마에 시달리다 우리 곁을 떠나갔다. 부부 같이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왔던 사이라 부산까지 한걸음에 달려가야 했다. 장기간 간병을 했던 그 친구가 점점 병세가 심해져 갔던 투병과정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말을 하고 있는 도중에 몇 번 눈물을 훔치느라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나는 궁금했다. 장례를 치르고 난 후, '그가 느끼게 될 가장 큰 고통은 무엇이 될까?
공원 벤치에 구순은 되어 보이는 연로한 부부가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언뜻 놓치고 싶지 않은 아름다운 모습 같아, 옆 벤치에 조용히 앉았다. 다정함을 나누는 대화 내용이라 기대했는데, 부인의 짜증 섞인 일방적인 잔소리였다. 아들 부부가 방문한 자리에서, 남편이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언행 한 것에 대한 질바카라 같았다. 부인은 호흡이 길었다. 세 문장 정도는 쉴 새 없이 퍼부을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보아, 일회성이 아니고 일상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놀라운 것은 남편의 태도였다. 말을 중간에 절대 끊지 않고 끝까지 듣고 있었다. 그리고 한마디, "알았어"였다.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들 부부가 이때까지 공원에 산바카라을 같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를.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나는 오래전부터 해로(偕老)라고 생각해 왔다. 해로(偕老)하고 동혈(同穴)까지 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해로하기도 버거운 여정이다. 헬스장에서 만난 노인부부는, 지금 어려울지라도 이대로 해로하고픈 욕망이 보였다. 다소 기계적인 것처럼 보였으나, 세심한 배려가 몸에 배어있는 부인에게서 절실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가진 마음속 미련, 아내를 잃은 친구의 가장 큰 고통, 모두 해로하지 못해서 느끼게 되는 아쉬움이라고 생각한다. 구순이 되어도 공원 벤치에 나와 앉아 같이 공유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부부는, 아름답지만 어려운 해로의 길을 헤쳐 나왔을 것이다. 참고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말이다. 오늘도 둘레길 가자는 아내의 일방적 요청에 군말 없이 따라나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