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넘어 행동으로 나서다

실무 능력 배가

by버티기

허름한 건물 5층, 학원은 거기 있었다. 빈 공실이 늘어가는 건물의 전형적 외관이다. 어둑한 출입구를 지나 삐걱 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이곳에서 전기실무 교육을 받고 있다. 오늘이 여덟 번의 주말 교육 중 마지막 날이다. 안내데스크에 앉아 건네는 강사의 인사말에서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난다. 강의실에 들어가니 두 명 만 앉아 있다. 매일 이 시간이면 거의 다 들어차 웅성거리고 있었는데, 허허로운 빈 공간이 낯설다. 어제 실질적 평가가 끝났다는 말의 효과인가? 마지막이 어설픈 사람들을 여기서도 보게 된다. 어쨌든 오늘이 지나면, 퇴사 후 To-do list 중 하나의 체크박스에 완료처리를 할 수 있게 된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불안함과 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갈증이 있었다. 빌딩 전기과장으로 있었던 일 년 사 개월 내내 그랬다. 어느 날, 주간 중 같이 근무하는 기사 한 명이 연차여서 영락없이 남은 기사 한 명과 민원처리를 해야 했다. 사무실 차단기가 떨어져 업무를 볼 수 없어 제기한 민원이었고, 다급한 목소리로 빨리 해결해 달라고 요구했다. 도착해서 확인해 보니 누전으로 인해 전원이 차단된 상태였고, 빨리 원인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운 좋게 누전 확인 시작 부분을 잘 선택한 덕에 빨리 전원을 복구시켜 줄 수 있었다. 그때, 주춤거리는 나를 쳐다보며 해결을 요청하던 기사의 눈길이 내내 잊히지 않았다.


이런 문제들은 반복되었고, 그때마다 느껴지던 따가운 눈초리가 부담스러웠다. 그럭저럭 해결해 나가기는 했으나, 늘 무언가에 압박을 받는 심정이 되었다. 이런 불편함의 근본적 원인은 부족한 전기 실무능력이었다. 경력이 일천하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했지만, 같은 상황을 반복하며 불편한 감정이 되는 게 싫었다. 퇴사 후, 이걸 해결해 줄 만한 교육이 있는지 찾아 나섰다. 부족한 부분을 일거에 해결해 줄 곳을 찾기는 어려웠다. 기대 수준을 조금 낮추니 이곳이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집에서 멀지 않아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이 큰 유인요소였다. 그리고 적당한 곳을 찾는다며 차일피일 미루는 시간도 아까웠다.


학원의 교육 환경은 탐탁지 않았다. 그것은 무엇을 얻을 것인가에 대한 기대를 낮추게 만들었다. 하지만, 강사가 모든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주중에는 온라인 게임에서 실무 일을 하고 주말에는 강사로 열정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입술 쪽에 핸디캡이 있었지만, 실무와 접목된 강의 내용은 상당한 흡인력이 있었다. 호텔 근무 시 외모 때문에 3개월 만에 그만두게 된 사연에는 인간적인 끌림도 느껴졌다. 전선을 까서 연결하고, 스위치와 콘센트를 설치해서 전등과 환풍기를 돌아가게 했다. 이어서 은밀하게 조성된 누전 개소를 찾기도 했다. 전기선을 까면서 내부도체에 손상을 입힌 사람들의 작업 지연 과정을 보면서, 기본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계속 곤욕을 치르게 된다는 관념이 들어와 자리 잡았다.


교육을 같이 받고 있는 사람들과 통성명하며 알게 된 것도 흥미롭다. 대부분 전기와 무관한 일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자격증 따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유수의 공항사, 기업 해외 주재원, 장기복무 군인 등 나름 묵직한 슬롯적 역할을 했던 경력의 소유자들이었다. 안정적인 연금을 받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마냥 쉬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는 듯했다. 그래도 막상 자격증은 땄지만, 전기 일을 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잠깐 근무 한 경험이 있었던 사람도 두려움으로 오래 버티지는 못한 것 같았다. 나 만큼 실무 경력을 쌓은 사람이 없다 보니, 교육받는 내내 경험담 들려주기 바빴다. 그들은 모두, 퇴직했어도 은퇴는 최대한 늦추고 싶다는 고뇌를 마주하고 있었다.


학원을 나와 서로 취업과 관련된 도움을 주고받기로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슬롯의 또 다른 역할을 찾아 나서는 그들이 흡족한 결과를 받아 들기 바라본다. 집으로 걸어오면서 뿌듯함이 밀려왔다. 과정을 통해 부족한 일부분을 갖추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다음 달에는 전주로 교육을 받으러 갈 계획이다. 수강비도 만만치 않고, 멀리 이동해서 이틀 숙박을 해야 하지만 결행하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편하다. 활동이 없으면 일상이 늘 평온하고 느긋하다. 하지만 이 과정이 반복되면, 결국 삶 자체가 무미건조해질 것 같다. 뒤늦게 후회해도 그땐 이미 늦어버린 이후가 될 것이다.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고 생각만 반복하는 경험을 많이 해왔다. 이제 더 이상 너무 깊이, 너무 오래 생각만 하며 낭비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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