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의미 재정의
친구!
진정한 의미에 대한 의구심이 점점 많아지는 단어다.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뜻은 쉽게 이해되지만 만들기는 어렵다. 가족이 아닌 이상 가깝게 오래 곁에 있기 힘들고, 그런 만큼 사귀는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설령 어릴 때 친하게 지냈더라도, 서로 다른 환경에서 타인과 가깝게 지내다 보면 관계가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네 번, 중학교 두 번의 전학을 다녔던 나에겐 애초 생기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이 있다면, 서로 그만큼 노력했다는 걸 거다. 나에게 친구가 있나? 불행하게도 의미에 부합하는 사람이 있다고 자신할 수 없다. 오랜 군 생활 동안 이합집산의 반복, 여기에 나의 성의 부족이 더해진 결과다.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친한 정도의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퇴직이라는 문을 통과하고 나니 그나마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버겁다. 목적이 다른 몇 개 모임에서의 만남, 경조사에서 스쳐가는 만남이 거의 전부다. 누가 특별히 서로의 만남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 한, 소원해지는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가끔 애틋한 마음이 들어 불현듯 생각나는 사람이 있기는 해도, 막상 이런저런 생각에 연락하기를 주저하게 된다.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친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점점 더 어려울 듯하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면, 친구의 의미를 재정의 할 필요를 느낀다.
매달 한 번씩 만나 등산을 하는 모임이 있다. 나는 그들의 모임에 뒤늦게 합류했다. 암묵적 동의 절차를 거쳐야 했기에 시간이 소요되었다. 다행히 거부 반응이 없어 합류할 수 있었고, 산행에도 동행했다. 그 이후 거의 모임에 빠지지 않았고, 이젠 핵심 멤버로 자리 잡은 듯하다. 네 명 이상만 가능하면, 산행은 무조건 집행된다. 거주지에 따라 목적지를 선택하기 어려운 점은 있었지만, 서울 인근의 산들은 두루 돌아본 것 같다.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 설산에서 막걸리 한잔, 더운 날 정상에서 시원한 연어회를 먹었던 기억이 오래 남아있다.
돌아보면, 합류하려 용기 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등산을 통해 건강 다지는 것은 물론,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대화는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이고 까탈스러운 분위기가 없다. 같이 시간을 보내는 내내 소탈한 친근함을 느낄 수 있다. 이번 모임에서는 부조금에 대한 생각들을 주고받았는데, 나와는 다른 견해와 인식이 놀라웠다. 특히, '부조금을 내지 않을 거면 부고장이나 청첩장이 떠도 위로와 축하 문자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나의 인식과 많이 달랐다. 만나지 않았으면, 부담 없는 분위기가 아니었으면, 들어보지 못할 이야기다. 다른 생각을 접하면서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사람들을 본다는 것이 좋다.
석촌호수를 가고 싶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문득 근처에 사는 친구가 생각났다. 전에 다른 친구부부와 결혼식에서 만나 석촌호수를 돌며 시간을 보낸 적이 있는데, 근처 사는 친구가 더운 기운을 식히자며 아이스크림을 샀었다. 불쑥 연락했지만 만날 수 있다는 말이 고마웠다. 따로 부부 만의 만남은 없었던 지라 신경은 쓰였다. 그 친구야 군 생활 중 같은 곳에서 근무하며 친근하게 지냈었지만, 부인과 대화를 섞은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부부는 닮는다는 데, 그 친구와 유사한 분위기 일 것이라는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잠실역으로 향했다.
나이 들어가며 아내가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제일 잘 알고 이해해 주는 절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친구 네 명이 모인 것과 같다. 자연스레 현재의 위치에서 살아가는 모습들이 주제가 되었다. 일을 꼭 해야 하는가? 그 친구와 생각이 다른 부분이다. 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그 친구는 회의적이다. 그렇다고 어떤 생각이 맞고 틀린 문제는 아니다. 부모와 형제들 간의 관계도 주제에 올랐다. 다 아픔이 있고 곤란함을 안고 있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지혜롭게 해결해 가는 과정이 오고 갔다. 자신 만이 안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은 더 이상 친구의 의미를 포괄할 수 없다. 지리적 위치, 지속된 기간이 판단 근거가 되는 잣대일 수 없기 때문이다. 육십 중반을 넘어가는 이 대목에서 더욱 그러하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친구가 될 수 있다. 더 이상 '나에게 친구가 있나?'라며 허허해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관건은 편안함과 다름에 대한 이해이고, 친구를 대하는 나의 태도이다. 공감과 동감은 다르다. 동감이 실제 같은 생각이라면, 공감은 다른 생각을 이해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편안한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언제나 친구가 될 수 있다. 거기에 나의 정성스러운 성의가 더해지면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