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견딘다는 것의 가치

소중했던 인내의 체험

by버티기

오랜만에 공원 산바카라을 갔다. 출퇴근할 때마다 지나다니던 곳이지만, 퇴사한 후 뜸했었다. 항상 지나다니던 정든 길을 따라 걷는데, 반가운 사람이 보였다. 반갑다는 말은 극히 주관적인 감정이고, 그 남자는 나를 모른다. 나이는 칠십 초반 정도, 시선을 내리깔고 힘겹게 뛰어가고 있었다. 지난해 가을 무렵부터 출근길에 만났으니, 10개월 넘게 달리고 있는 셈이다. 팔 한쪽이 밑으로 쳐진 상태로 발을 끌다시피 뛰는 모습이 힘겨워 보인다. 호흡은 가쁘지만 속도는 항상 일정하다. 한 겨울에도 추워 보이는 옷 만 입은 채, 마주쳐 뛰어갔었다.


한 달 여 못 봤는데, 같은 모습으로 달리고 있는 그를 보니 새삼 놀라웠다. 불현듯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다. "연세로 보면 힘드실 텐데, 매일 뛰셔야 되는 이유가 뭔가요?"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이유가 아니라, 어떻든 계속 뛰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뛰어야 할 이유는 있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을 같은 모습으로 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무언가를 장기간 지속한다는 것은 어려운 영역이다. 더구나 체력적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경우는 더 그렇다. 뛰어가는 뒷모습의 잔상이 오래 남아, 참고 견딘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었다.


얼마 전, 참고 견딘다는 것의 어려움을 톡톡히 체험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처형네 일정 때문에 처가모임이 취소되면서, 이틀의 여유시간이 생겨 여행을 계획했다. 아내는 미리 휴가를 받아 놓은 터였다. 갑자기 생긴 이틀, 어떻게 채울지 막막했다. 결국 제미나이가 알려준 세 곳 중, 한 곳을 택했다. 그곳은 문경이다. 십여 년 전에 지인의 초청으로 갔었지만, 수박 겉핥기 하고 온 것 같아 늘 아쉬움이 있었다. 그 외에도 맨땅의 큰길을 맨발로 걸을 수 있는 코스가 눈에 확 들어왔다. 지나다니던 공원에도 있었으나, 번거로움을 감수할 용기를 못 냈다. 발 씻는 시설을 비롯한 시설이 미비한 것도 한몫했다. 숙소 예약을 마치고 나니, 은근히 들뜬 여행 기분으로 바뀐다.


첫 번째 일정인 문경새재, 기대되었던 맨발 코스가 있는 곳이다. 제3관문까지 6.5km, 왕복을 해야 하니 13km, 삼 십리가 넘는 길이다. 보통은 제2관문까지 6km 정도 걷고 되돌아온다고 했다. 맨발로 걸어야 할 길은 넓고 편평하게 잘 만들어져 쉽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곧바로 신발장에 신발을 벗어 넣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아내는 맨발로 걸어야 되는 거리가 멀다며 진즉에 포기했다. 근거 없는 나의 호기를 보며, 아내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 신발 들고 가는 걸 제안했다. 조금 걸으면서 예상과는 많이 다름을 감지했지만, 칼을 뽑았는데 다시 칼집에 꽂을 수는 없었다.

문경새재 맨발코스 2.jpg


평상시 하지 않던 맨발 걷기를 여기서 강행하는 것이 애초 무리였다. 편평해 보였던 길 위에는 미세한 돌가루가 많았고, 보드라운 발바닥으로 전해져 오는 통증이 만만치 않았다. 쉬다가 걷기를 반복하며 도착한 제2관문, 아내는 되돌아갈 것을 제안했다. 제3관문까지 3.5km, 7km를 더 걸어야 했다. 순간적으로 약한 마음이 들었지만, 참고 견딘다는 것을 택했다.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아내를 애써 외면하고 고행길로 나아갔다. 결국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와 발을 씻었고, 신발을 신어도 전해지는 통증을 견디며 주차장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무리인 줄 알았지만, 참고 견딘다는 것을 체험하고 난 뿌듯함이 느껴졌다. 아내가 사준 약돌한우는 고행을 견딘 것에 대한 보상 같았다.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것. 이것을 인내(忍耐)라 한다. 어쩌면 인생의 성패는 얼마나 참고 견뎠는가에 달려있고, 현재의 위치는 그 결과에 따라 주어졌을 것이다. 이제 2막의 인생에 들어서서, 참고 견딘다는 것이 남의 일인 양 편안함 만을 추구하려는 관성이 몸에 붙어간다. 이제 와서 뭘 또, 이 나이에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늘 앞선다. 그러다 보니 생활이 정리되지 않고, 방향성이 어수선해진다. 이런 시기에 만났던 뛰고 있던 나이 든 남자는 많은 영감을 안겨줬고, 몸소 고통을 감내해 본 문경새재 맨발 걷기에서는 용기를 얻었다.


다음 단계는 "무엇을 하기 위해 참고 견딜 것인가?'를 설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훗날, 인생을 되돌아보며 후회하게 되는 시기가 있을 것이다. 그때 후회의 다소에 따라, 회환의 깊이는 차이가 나게 된다. 이 대목에서 후회할 거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할 당위성을 찾을 수 있다. 참고 견딘다는 것의 가치는 실로 심대하다. 목표를 이루어 내기 위해 참고 견뎌내는 과정을 통해, 삶의 활력소는 물론 성취감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홀가분함과 무거움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