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집이 말해 주는 것들

공간은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일부다.

byNaN누구

나는 공간을 다루는 일을 하다 보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공간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집에서 드라마를 보면서도 공간과 인물의 관계를 관찰한다. 따뜻한 온기를 가진 사람으로 나오는 여자 주인공의 집에는 어김없이 포근한 소파와 그 소파를 감싼 알록달록한 니트 블랭킷이 있고, 햇살이 잘 드는 식탁이 놓여 있다. 반면 외롭고 냉정한 남자 주인공의 집은 넓고 세련되지만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냉장고는 비어 있고, 주방 아일랜드는 너무나 말끔하다. 이런 개인의 성격과 성향을 공간으로 보여 주는 것이 드라마와 영화 미술감독의 일이다. 그리고 인물의 감정이나 상황이 변하면 공간도 함께 변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재밌는 것은 우리의 공간이 드라마나 영화처럼 단시간에 볼 수가 없을 뿐, 같은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나 역시도 마음이 허할 때 오히려 온갖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맥시멀리즘으로 살던 어린 시절의 집과 지금의 집을 비교하면 내가 그때와 달라졌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는 삶에서 공간의 영향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어린 시절 살던 집, 가족이 함께 앉았던 식탁, 혼자 있을 수 있었던 방의 유무, 창밖으로 보이던 풍경, 학교와 동네의 구조 같은 것들은 오랫동안 반복되면서 우리의 행동과 감각에 공기처럼 스며든다. 하지만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환경의 영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영화는 그 익숙한 관계를 잠시 외부에서 바라보게 해 주는 일종의 공간적 거울이 된다.


영화 속 공간은 실제 공간보다 훨씬 압축되어 있다. 감독은 집의 크기, 창문의 위치와 풍경, 문과 복도, 계단, 식탁의 자리, 인물 사이의 거리까지 의도적으로 배치한다. 영화는 현실에서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곳을 더 극적으로, 때로는 더 극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보며 평소에는 잘 의식하지 못했던 공간의 작용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누가 방의 중심을 차지하는지, 누가 자기 방을 가지고 있고 누가 공용 공간에 머무는지 같은 장면들은 공간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관계와 권력, 감정과 기억을 조직하는 장치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런 시선이 중요한 이유는, 영화 속 좁은 집을 보며 단순히 “가난한 집”이라고 이해하는 데서 멈추지 않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 공간에서 가족이 서로의 사생활을 얼마나 침범하게 되는지, 갈등이 어떻게 생기는지, 반대로 가까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볼 수 있다. 큰 집 역시 단순히 좋은 집이 아니다. 방이 많아질수록 가족이 서로 마주치지 않을 수도 있고, 넓은 식탁이 오히려 사람 사이의 거리를 드러낼 수도 있다.

이렇게 영화를 보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그렇다면 내가 살았던 집은 나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했을까?”


영화를 읽는 일은 자기 이해로 이어진다. 내가 혼자 있는 공간을 유난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 물건이 많은 공간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이유, 반대로 비어 있는 공간을 좋아하는 이유, 어떤 이는 큰 식탁에서, 어떤 이는 작은 식탁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가 단순한 ‘취향’만은 아닐 수 있다.

그것은 내가 살아온 공간과 관계의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내가 쌓아 온 그 경험을 스스로 분석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영화는 직접 고백하거나 심리적으로 분석하지 않아도 그 경험에 간접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작은 실마리가 되어 준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공간을 개인의 문제에서 슬롯의 문제로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집은 개인이 선택한 물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경제적 조건, 도시 구조, 가족제도, 계급, 문화, 시대의 영향을 받는다. 아파트에서 자란 사람과 단독주택에서 자란 사람, 도시 중심부에서 자란 사람과 외곽에서 자란 사람은 서로 다른 공간적 경험을 가지게 된다.

시골에서 자랐던 나 역시 도시의 친구들과 동시대를 살았어도 좁혀지지 않는 다름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 속 공간을 읽는 일은 결국 “왜 이런 집이 만들어졌는가”, “왜 이 사람은 이런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고, 개인의 삶과 슬롯 구조가 만나는 지점을 보여 준다.


좋은 공간과 나쁜 공간을 구분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나에게 어떤 공간이 필요한가”를 스스로 질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어떤 사람에게는 열린 거실이 좋은 공간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혼자 숨을 수 있는 작은 방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공간에는 보편적인 정답이 있기보다 개인의 역사와 관계, 생활방식에 따라 다른 적합성이 존재할 뿐이니까.


이 바카라에서 나는 영화 속 집들을 그렇게 읽어 보려 한다. 감독이 공간에 펼쳐 놓은 시선을 따라가며, 나라면 이 공간의 어디를 볼 것인지, 어떤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지 사색해 보려 한다.

영화 속 집을 들여다보는 일은 결국 내가 살아온 집을 들여다보는 일이 되기도 한다.



다음 첫 영화는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공간을 이야기하겠습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