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하던 집단 프로그램이 있었다. 주제는 상담자 성장과 돌봄. 내가 소속된 상담 학회 게시판은 집단상담 참여자 모집 홍보 글로 무성하다. 대부분은 이틀 과정으로 열 다섯 시간을 이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번에 참여한 집단상담은 격주로 2시간씩, 총 8회 과정으로 진행됐다. 집단상담이 이틀 동안 진행되면 참여자 개인의 내면과 참여자들 간 역동을 회기 내에서 깊이 다룰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16주 동안 진행된 집단상담에서는 집단 내에서 나눈 개인의 주제가 삶에서 다루어지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제 한 명씩 돌아가며 소감 나누고 마치도록 할까요?" 집단 리더는 말했다. 마지막 회차인 8회기에서는 한 명씩 돌아가며 소감을 나누며 전체 세션이 마무리되었다. "제가 먼저 말해보겠습니다" 오른손을 구부정하게 들고 나지막이 의사를 전달했다.
"저는 오늘로 이 집단에서 세 번째 소감을 말하고 있어요. 또또 참여한 셈이에요"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던 나는 숨을 골랐다. 동그랗게 놓인 의자. 출구를 바라보는 위치. 맞은 편 참여자의 발등. 집단 상담실에 처음 발을 들인 순간부터, 소감을 말하는 마지막 날까지 한결같다.
첫 집단에서는 '참여하고 싶으나 거절당할까 봐 두려운 나'가 주제였다. 집단 리더의 도움으로 5회기에 이르러 처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두 번째 집단에서는 '회피와 의존의 역사, 방치되어 있던 아이'가 주제였다. 한 회기 전에 말하겠다고 예고하고, 다른 참여자의 초대로 이야기를 꺼내볼 수 있었다.
세 번째 집단에서는 '방치되어 있던 아이가 세상 밖으로 스스로 걸어 나가다'가 주제였다. 나는 소감을 말하던 중 떠오른 이미지를 참여자들에게 개방했다.
"어렸을 때, 아빠와 목욕하다 혼나곤 했었어요. 발가벗겨진 상태로요. 아빠의 눈동자는 이글거리는 태양과 같았고, 바위처럼 굳은 표정,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목소리, 움켜 쥔 샤위기를 집어던질 듯한 자세가 기억나요. 어둑한 불빛 사이로 있었던 아빠와의 대치가 문득 떠올랐어요."
집단상담실은 고요했다. 의자가 끌리는 흔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재잘되던 초침조차 침묵하는 듯했다.
"저는 그곳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경험했던 것 같아요. 아빠가 강조하는 안전의 범위를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죄송하다고 말하지 않으면 제가 공격당할 것만 같았거든요. 두려움에 떨며 굳어있던 제가 스스로 옷을 입고 화장실 밖으로 걸어 나가는 장면으로 상상은 이어졌어요.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간 저는 거실을 걸었어요. 현관으로 향하던 저의 입가에는 미소가 그득했어요. 팔은 앞뒤로 힘차게 움직였고, 걸음은 당찼어요."
내가 상상으로 걸어간 거실은 우리 가족이 살았던 곳이자, 기억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꿈의 배경이 되는 장소이다. 꿈에서는 검은 정장과 중절모, 선글라스를 낀 세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컴컴한 거실에 누나, 세진이 앞에 함께 서 있던 어린 나는 그들 중 한 명이 쏜 총에 가슴팍을 맞고 쓰러진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안돼, 일어나야 해!' 외치지만, 소리 없는 절규에 그친다. 세 남성이 말 없이 걸어오고, 겁에 질린 누나와 세진이 사이에서 고통스러워 하다 잠에서 깼다.
"아이의 걸음은 현관에서 멈추지 않았어요. 현관 밖으로, 세상으로 향했어요. 세계는 빛으로 가득했어요.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고, 흙으로 햇빛이 고루 스며들 듯이, 굳었던 몸이 빛으로 채워지기 시작했어요. 저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벅차오르는 마음으로, 무엇이 나타나든, 가로막든 걸어 나갈 것 같았어요."
집단에서 나는 하고 싶었던 말을 모았다가 터뜨리는 편이었다. 세 번의 집단에서 같은 방식이 반복되었다. 또다시 과거를 회고하며 독백한 내게 집단 리더는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나누기 원하는 말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집단 회기가 진행되던 내내. 집단 리더의 눈에는 세계의 빛이 스며들어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여기에 있는 모두가 자신과 같은 마음일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상담자 성장과 돌봄' 집단에서 만난 모든 참여자들은 나의 고백을 깨지 않았다. 스무 명도 넘는 이들이 저마다 나를 기다려주었다. 나는 집단마다 30분 정도, 하고 싶은 말을 남김없이 토해냈다. 침묵이 길게 이어진 뒤에 참여자들은 한 사람씩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가만히 듣고 있었지만, 혼자 말했지만, 말끝을 곱씹는 내게 환희의 물결이 밀려오는 듯했다.
그들은 분명 나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했다. 잠자코 있던 언어들이 깨어 나오자, 그것이 스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통과 상처, 흉터로 일그러진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진지한 태도로 화답했다. 집단 참여자들은 두 차례 바뀌었지만, 언제나 근처에 앉아 있을 것처럼, 한결같은 모습으로 내면 속 나를 환영해 주었다.
그저께, 꿈을 꾸었다. 꿈에서는 교수 세 명이 등장했다. 온라인 강의에서 본 교수들로 상담 분야에서 저명한 이들이었다. 교수들은 교단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때, 한 교수가 나를 돌연 지목하며 문제 풀이를 설명해 보라고 했다. 말문이 막히자 다른 문제를 예시로 풀이를 설명해 주었다. 다시 설명해 보라는 지시에도 버벅거리자, 교수는 "아니, 이걸 몰라서 어떡해?" 말하며 한심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수강생들이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가 문제 풀이를 직접 설명하며 대치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러나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내적 갈등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했다.
교실에 앉은 사람이라면 몰라서는 안 되는 풀이 방식 같았다. 내가 스스로 부족하고 모자라게 느껴졌다. 수치스러웠다. 그때, 충동성이 동시에 일어났다. '견딜 수 없다. 죽자. 죽어야만 이 부끄러운 상태로부터 자유로워질 것 같다' 강렬한 감정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옥상으로 올라갈 거야' 더 나아가 죽는 순간까지 구체적으로 떠올랐다.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자극으로 괴로워할 때, 옆에 앉아 있던 조카가 말을 걸어왔다. 조카는 말을 이어갔고, 내가 반응하지 않자 자신의 오른발과 나의 왼발을 끈으로 묶어갔다. 조카의 열중하는 표정과 망설임 없는 손길을 나는 가만히 쳐다보았다.
생생한 감정들을 고스란히 느끼며 잠에서 깼다. 꿈의 의미를 곱씹다 보니, 조카는 내면 아이를 상징하는 듯했다. 아이는 내가 경험한 일촉즉발의 감정들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 경험했던 수치스러움과 충동성이 꿈을 통해 재현된 듯했다. 나를 향하던 아이의 모습은 '그래, 나도 알아. 내가 알아. 괜찮을 거야'하는 메시지를 행동으로 전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내가 부정당했다고 생각되는 순간마다 좌절감을 경험해 왔다. 특정한 순간에는 죽음을 몰랐지만,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약, 꿈에서 경험한 내적인 감각을 어린 내가 경험했더라면 견디기 어려웠을 거란 생각마저 들었다. 고통 속에 방치되었던 어린 내가 조카의 모습을 빌려 자신이 경험한 아픔을 나에게 공유하면서도, 곁에 있을 거라는 믿음을 보여주었다. 몸을 맞대며 함께라고 알려주었다.
이번에 꾼 꿈과 집단상담 과정을 연결 지어 보면, 참여자들이 보이는 모습은 내가 간직하는 결핍과 추구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활발하고, 수줍고, 익살스럽고, 차분하고, 용감한 면면은 내가 가지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어떤 면은 발달했고, 퇴화되었으며, 가진 배경과 맞닥뜨린 환경 속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선택이라고 믿던 행동을 취해왔다.
집단 리더와 참여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에게 반응했다. 특히, 독백했던 3회의 과정에서 나는 그들의 각기 다른 반응을 위로로 받아들였다. 방치되어 있던 과거의 부분을 거부하지 않고 돌보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나를 위하는 사람들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상상의 세계에서 아이의 걸음마다 빛이 비친 이유는, 내가 아이를 보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내가 아이를 그대로 바라보았으므로 아이는 눈앞에 펼쳐진 세상으로 향할 수 있었다. 집단 리더의 눈이 빛처럼 기억되는 까닭은, 있는 그대로 나를 지켜보려던, 굳건하면서도 순수하고 다정한 면이 나를 향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참여자들을 나를 보듯 바라보았다. 나와 참여자들은 서로 구분되어 있었지만,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때때로 나를 보듯 그들을 보았고, 그들은 우리라는 인식으로 나에게 반응했다.
나는 스스로 빛날 수 있다는 표현을 믿는다. 자신의 빛으로 곁에 머무는 사람들을 비출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나는 나로부터 빛나고 있다. 구름이 드리우면 자취를 감추기도 하지만,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를 위해, 그들을 위해, 우리를 위해 세계의 빛이 향하고 있다.